[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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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7. 07:56

   병선과 진희는 교회 성원과 떨어져서 운진네와 지내다가 미리 귀가하고.
운진과 숙희는 삼일째 되는 일요일날 비로소 모래에 나가 앉을 수 있었다.
그 날은 날씨도 쾌청했고, 백사장은 수 많은 양산과 비치 타올로 뒤덮혔다.
두 사람은 모래에 미리 세워놓은 해가리개 우산을 임대하고 비치 의자도 빌려서 누웠다.
   "운진씨, 물에 안 들어가? 수영할 줄 몰라?"
   "이런! 임진강을 건너 다닌 사람한테."
   "어... 그 강은 남북 경계선 아냐?"
   "중간에 조그만 땅흙이 있어요. 거기서 북 애들하고 얼굴 맞대고 경계..."
   "와아... 지금 나한테 공갈치는 거지!"
숙희는 원 피스 수영복 차림에 얼굴을 거의 다 가리는 안경을 쓰고 바다를 내다본다.
운진은 윗통은 벗은 채 누워서 상체에 선탠 로숀을 바른 후 숙희의 넓적다리에도 발라주었다.
숙희는 그의 손놀림을 잠깐 잠깐 보며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가로히 바다 구경을 하는데.
운진은 과수원을 인수 해 놓고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인가 머리가 팽팽 돈다.
숙희는 노동절 휴가가 끝나서 돌아가면 이글과의 남은 계약 문제와 하워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연구하느라 파도 소리가 이따금씩 귀에 안 들린다.

   한씨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가게로 돌아왔다.
한씨 부인이 외마디 소리로 왜 그러느냐고 물었을 때, 한씨는 넘어졌다고 거짓말했다.
   흑인 백인 섞인 청소년들한테 몰매 맞은 창피스러움을 어찌 말하랴.
   걔네들이 담배 있느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할 것을 어린 놈들이 싸가지 없어서 그 중 한놈을 쥐어 박으며 뭐라 했더니 그만... 망신은 망신대로 당한데다가 모두 파출소에서 하룻밤씩 갇혔다가 나왔다.
한씨는 쥐구멍이라도 기어 들어가고 싶다.
   내가 그 미스터 오의 반만이라도 따라가면... 아니. 
   숙희만큼만 하더라도 이번 같은 망신은 없는데.

   영란은 하늘 무서운 짓은 못한다.
감히 애를 지우는 행위는 천벌을 받을 짓인 것이다.
그녀는 솔직히 그녀 자신을 꾸짖는다.
   도대체 남녀 간의 셐스가 뭐길래.
   미술선생 작자가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입 밖으로는 미친 놈이란 호칭이 나갔지만, 사타구니로는 성기와 성기의 마찰과 그로 인한 쾌감이 잊혀지지도 않고 떠올라서...
그러나 애비가 있지만 애비 없는 자식으로 만들 수가 없다.
   교회는 청년회가 다 빠져 나가서 썰렁했다.
성가대도 반 밖에 안 되고. 
진희가 빠져서 피아노 반주자로 전에 잠시 썼었던 나이 든 아주머니를 연락하니 휴가 중.
그래서 영아를 피아노 앞에 앉혔는데.
본당은 떠나간 집처럼 듬성듬성 따로 앉은 가족 단위가 전부였다.
특히 영란에게는 오운진이란 사내가 안 보이는 것이 큰 허공이다.
그가 영란에게 눈길을 주거나 아는 체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를 엿보고 말을 걸고 싶어하는 욕망이 연결되는 한 영란은 교회에 나가는 목적과 산다는 이유가 생기는데.
영란은 운서에게 접근했다.
   "가족분들 모두 휴가 떠나셨나 봐요? 아무도 안 나오시구..."
   "네. 부모님은 친구분들이랑, 동생은 여자 친구랑, 오션 씨티 갔죠."
   "아, 네에..."
영란은 겉으로는 좋게 인사를 나눴지만 속은 쓰리다.
   여자 친구랑 오션 씨티를 갈 정도면 굉장히 많이 진전했다는 소린데...
   여자가 굉장히 세련되고 배운 티가 나던데,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그런 게 아무 소용 없나.
   혹 소문에 두 사람이 동거 한다더니 정말인가.
이제 영란은 딱 한번 시도하고는 물러섰는지 돌아섰는지 하는 미스타 황을 염두에 둔다.
그런데 그 날따라 미스터 황도 안 보였다.
영란은 허탈한 심정에 입 밖으로 아무 음률이 안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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