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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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7. 07:58

   숙희는 잠자코 걷기만 하는 운진을 자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어머니 마음이 나한테 없으신가 봐, 운진씨. 어떡해?"
   "상관없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
   "신경쓰지 말아요."
   "공희엄마 만나시기 전에부터 그러셨어?"
   "음... 물론 공희어머니가 이상한 짓을 한 바람에 틀어진 것도 있지만. 원래... 어머니가 점 찍어 놓고 저한테 소개하려던 여자가 있었잖아요."
   "한국에, 미국에?"
   "한국에... 는, 말고, 숙희씨도 알죠. 큰숙모의 사돈 처녀."
   "아... 어머니가 그 여자를 좋아하셔?"
   "..."
   "어머니 마음이 나한테 돌아오시면 좋을텐데..."
   "..."
   "내가 화원에서 기거하니까 더 그러시나 봐."
   "우리 둘이 결혼만 안 했다 뿐이지, 이미 부부나 다름없다고... 여기시면서도."
   "엑!"
   숙희는 운진의 히프께를 툭 쳤다. "그건 아니다?"
   "누님도 저더러 조심하는 거냐, 절제하는 거냐 하실 정도면 다들 기정사실로."
   "나 억울한 건 염두에 안 두고?"
   "아마 그래서... 저 정도로 나오시는지."
   "억울한데? 내 속을 까뒤집어서 보여 드릴 수도 없고."
   "뭐요? 뭘 보여줘요?" 운진이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고 들여다 봤다.
   "..." 숙희는 얼굴을 뒤로 물렸다.
   "듣다 보니 말이 이상하네."
   "무슨 생각하는데?" 
   숙희가 운진의 잔등을 때렸다. "나 아직도 처녀인 거 보여 드리라구?"
   "아니, 억울해서 뭘 까뒤집어 보인대매요."
   "..." 
   숙희의 얼굴이 빨개졌다. "남자들 다 그래? 그런 음담패설, 아무렇지도 않게 해?"
   "시작은 누가 했는데 그래요?"
   "와아!..."
숙희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운진의 팔을 다시 잡았다. "나는 그 누구든 첫날밤까지는 절대로 날 허락 안 해."
   "녜, 녜! 근데, 문제는, 그 첫날밤을 숙희씨가 늘 먼저 깨려고 했죠."
   "뭐?"
   "술만 들어가면, 저더러 자자고 했잖아요."
   "그, 그래서?"
   "누군 수도승인 줄 알아요?"
   "그, 그래서?"
   숙희는 묻고 싶은 게 따로 있다. "그래서, 나 술 취했을 때, 날... 만졌어?"
   "그래서 제가 숙희씨더러 술 하지 말라 한 거예요. 술만 들어가면 인사불성이 되더라구요."
   "아아..."
숙희는 한의가 맥을 짚고 나서 해 준 말이 기억난다.
   간과 신장이 안 좋으니 술을 못 이긴다고.
   그래서 주량만 센 줄 알고 술을 마셨다가 몸에서 걸러내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버리니 누가 업어간들 누가 무슨 짓을 한들 알랴...
숙희는 그의 팔을 다시 잡았다. "고마워. 나를 지켜줘서."
   "오죽하면 제가 숙희씨 막 사는 분인 줄 알고 절교하려 했겠어요."
   "아냐아! 나 정말 깨끗해!"
   "설마, 나중에 신혼여행에서 뽀롱나서 이혼하는 일은 안 벌어지겠지."
   "어쨌거나 내 몸에 남자 받아 들인 적 없어. 하늘에 맹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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