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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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7. 07:55

   영란은 멘스가 완전히 건너 뛴 것으로 확인지었다. 
아예 한 방울도 비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눈 앞에 사물들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이제 어디다 하소연을 할 것인가.
그 원수를 떨구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덜커덕하고 그 원수의 애를 또 배었으니.
영주권만 받게 해 달라 해서 같이 들어왔더니, 만 2년 넘은 지난 달 영주권 받자마자 다른 여자를 맞아 들인 인간인데, 어쩌다 또 몸을 섞고는 임신.
그녀는 몸이 아프다고, 정말 임신 초기의 징조가 나타나서, 남동생을 전화로 불러냈다.
그리고 집으로 온 영란은 어디가 아프냐고 묻는 모친에게 대꾸없이 방으로 갔다.
그녀는 침대에 펄썩 쓰러지며 아아아 하고 비명을 질렀다.
   어떡하나! 어떡하나! 어떡하나...
태어나기로 되어 있는 아이는 때가 되면 이유야 어떻든 잉태되고 달이 차면 나오게 되어 있는지. 
영란은 어떤 아이가 나오든 키우기로 마음 먹는다. 천륜을 거스릴 수는 없으니까.

   한편.
한씨는 작은딸과 사위의 히히덕거리는 꼴이 눈에 거슬려서 죽으려고 한다. 
성질 같아서는 흠씬 패주고 내쫓아 버리고 싶지만, 딸이 좋다 하는데...
후욱!
한씨는 한숨만 나온다.
이제 스물을 넘은 딸을 열살이나 많은 놈이 어떻게 꼬셨길래 소위 연애질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임신을 시켜서 부랴부랴 결혼식을, 그것도 엉뚱한 미스터 오한테 손을 벌리게 만들면서까지.
그런데 둘이는 눈 뜨고 못 봐주게 논다.
그거 보면 숙희는 제 엄마를 닮아서 잔정은 없어도 늘 꾸준한데.
숙희는 미스터 오를 잘 만난 것 같애.
뭘 했던 놈이길래 제 키 만한 애를 어깨에 걸치고 우리 셋을 다 물리치나. 어디 특수훈련 받은 놈인지 발차기랑 정권이 보통 실력이 아닌 걸.
한씨는 숙희가 한국에 나가서 공희엄마의 먼친척과 결혼해서 미국에 들어오게 해주면 얼마의 돈을 받기로 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겠지만. 의붓애비 아닌 이상한 아비로서 마음 한 구석으로는 그 둘이 잘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더 늙어져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딸 둘 중 누가 손을 내밀어 줄지...
한씨는 사위가 일 끝났다고 가게로 온 것을 핑게로 나선다. 마누라의 고함을 뒤로 한 채로.
한씨는 정작 갈 데가 없다.
예전에 약세사리 가게 할 때는 옆 세탁소의 혼자 살던 아주머니를 늘 꼬시려고 했었고.
같은 샤핑 센터의 양품점에서 일했던 젊은 처자를 꼬셔보려고도 했었고.
이제 그는 딱 한군데를 간다.
모 카운티에서 어느 공원에다 만들어 준 노인정. 그 곳에 할 일 없고 갈 데 없는 노인들이 나와서 빈둥거리는데, 딱 한명의 할머니가 가끔 나온다.
한국에서 굉장히 유식한 부류층에 있었고, 지금도 노인들의 인생 상담을 해주는...
그 할머니와 대화 좀 트려면 아닌 말로 번호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그런데 그 할머니가 유독 한씨만 외면한다.
이 날도 한씨는 후덥지근한데도 불구하고 그 노인정에 갔다.
그런데 하필 노인정에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한 명도 안 보일 수가 있나!
   한씨는 바람 한 점도 없는 노인정 주위를 돌다가 아무 데고 펄썩 앉았다.
   '도로 한국으로 나갈까... 숙희엄마가 날 받아줄래나. 그래도 장군님을 찾아간 건 난데...'
한씨는 이제 와서 숙희모에게 안 좋게 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숙희는 내가 지 엄마한테 한 것을 갖고 가슴에다 한을 품고 살 텐데...
   한씨는 갑자기 인생이 허무하게 여겨진다. 
한씨는 갑자기 이 땅덩어리에서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이거 우울증의 시초 아냐?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앉다가 해도 노인정에는 개미 새끼 한마리 얼씬 않는다.
한씨는 괜히 땀만 흘렸다고 자신을 나무라며 차 세워놓은 곳으로 향했다.
멀리서 일단의 청소년들이 몰려 오는 것이 보였다.  
한씨는 거드름을 피며 그들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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