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첫날 내내 쉬지않고 퍼부었다.
청년회 수양회는 교회 버스 안에서 진행되어져야 했다.
수업이야 반토막으로 넘기더라도 잠 자는 것이 문제였다.
새삼스레 민박이나 값싼 모텔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운진과 숙희는 그 수업에 당연히 참석하지 않았다.
둘은 호텔 꼭대기 방에서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 비 내리는 바다를 구경했다.
그들이 움직인 때라고는 그 호텔의 라비에 딸린 레스토랑에 내려가서 식사를 한 것 뿐.
바닷가는 라이프가드 조차 철수했다.
몇몇 비바람을 무릅쓰고 모래 위를 걷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들은 고함도 지르고 하늘을 향해 악도 쓰는데 젊은층들이었다.
"기껏 힘들여 왔는데, 비 때문에 잡치니 화도 나겠다."
운진이 그들을 내려다 보며 한 말이다.
"태풍인가, 운진씨?"
"글쎄요..."
숙희는 강풍이 부는 소리를 두렵게 느끼며 운진에게 더 가까이 했다.
숙희가 그의 허리로 팔을 둘렀다.
파도는 더욱 성을 내며 그 허연 이를 사정없이 몰고 와서 모래에 부딪는다.
보드워크를 따라 세워진 보안등을 바람이 쉭쉭 소리로 가르며 지나간다.
패디오와 패디오 사이를 막은 칸막이가 마구 흔들렸다. 그 패디오 칸막이에 바람은 그들이 내다보는 방향에서 옆으로 스쳐가며 빗물을 마구 때렸다.
"태풍이면 시계 방향 반대로 돌거든요?"
"근데, 지금은?"
"남풍인가?..."
운진은 방 안을 돌아다봤다. "전파가 제대로 잡힐래나?"
"왜?"
"이런 건물 옥상에 대형 안테나를 세워놓고, 거기서 각 방마다 선을 연결할 걸요. 그런데, 옥상 위의 안테나가 바람에 흔들리면, 잘 안 잡히죠."
"일기예보 보게?"
"나랑 내려가 볼래요? 라비에는 텔레비젼이 나오나."
운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그의 손을 얼른 잡았다. "I'm scared!"
"덩치는 큰 분이 겁은..."
"덩치 크다고 난 여자 아니냐?" 숙희가 운진의 팔을 꼭 끌어 안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팔뚝에다 유방을 비비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뉘었다.
모두 그 호텔 투숙객들인지 많은 사람들이 라비에 모여서 한쪽 벽에 켜져 있는 대형 텔레비젼을 일제히 보고 있다. 화면에는 남쪽 다른 주의 해변가라고 자막이 알려주고. 안경 쓴 남자가 우비를 입을 채 열심히 떠든다. 열대성 저기압 폭풍에서 잘 하면 태풍으로 격상될지도 모른다고.
"올라갑시다." 운진이 숙희의 팔을 꼭 안은 채 돌아섰다.
숙희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화면을 볼 수 있는 만큼 보려 했다. "우린 괜찮대?"
"나가야 되면 호텔에서 나가라 하겠죠."
"비가 장난 아닌데."
운진이 엘레베이터 앞에서 호텔 정문을 내다봤다.
비는 똑같은 속도로 내리고 있었다.
병선이를... 데려 오나?
운진은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것을 봤다. '포기하고, 들, 갔나?'
숙희가 엘레베이터 단추를 또 눌렀다.
운진은 닫힌 순간 도로 열리는 문을 보다가 돌아섰다.
"왜?... 안 타?"
"병선이가 갔나... 병선이 보다는 그 피아노 치는..."
"피아노 반주자?... 왜?"
"아, 아니요!"
운진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황했다. 남의 속도위반이 왜 이렇게 신경씌이지?
진희씨 목걸이가 왜 화원 안채 소파 밑에서 나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