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지나간 다음날은 늘 거짓말같이 개인다.
마침 토요일이라 보드워크는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운진은 일부러 네거리를 두 개 정도 걸어서 찾아진 도넛 가게로 갔다. 숙희가 아침으로는 꼭 도넛과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데 역시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거기서 교회 성원들을 또 만났다.
"진짜 눈꼴 시어서 못 봐주겠네." 황성렬이 내뱉은 첫 말이었다.
제 딴에는 농쪼로 그렇게 말했겠지만 본심에서 우러나는 질투심을 나타내는 제스처였다.
숙희와 운진은 애쓸 필요도 없이 성렬을 무시했다.
운진은 병선이나 진희가 안 보임에 궁금해졌다.
두 사람은 마침 비어지는 자리를 차지했다.
"신혼 첫밤은 어땠는고?"
성렬의 두번째 비양거림에 반응을 보이는 이가 하나도 없다.
"요즘은 프레-허니문 베비가 유행이라지?" 성렬의 빈정거림은 계속 되었다.
"..."
숙희는 전혀 안 들린다는 듯이 앉은 자리에서 몸을 돌려 카운터 쪽을 봤다.
운진이 일어서서 카운터로 갔다.
"거, 커피 마실 때 커핀지 코핀지 잘 구분하지?" 성렬은 계속 이죽거린다.
"..."
여남은 명의 교회 성원들이 성렬과 운진 그리고 숙희를 번갈아 보다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금새 성렬만 남았다.
운진이 주문을 마치고는 성렬에게로 다가갔다.
"우디... 우디!" 숙희가 나즈막히 불렀다.
운진은 성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성렬이 눈만 내리 깔아서 운진의 손을 봤다.
"신혼 첫밤이 아니라, 구혼 구십구밤이다."
"체!... 으, 체!" 성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스타 황도 이젠 참한 색씨 찾아 나서지? 남의 떡 봐 봤자 목만 마르지."
운진이 성렬의 어깨에 얹은 손으로 그의 턱을 톡톡 쳤다. "그만 하자."
성렬이 몸을 움직여서 운진의 손을 피했다.
"우디. 우리 주문한 거..."
숙희의 그 말에 운진이 움직였다.
"보기 보다 뻔뻔하네?" 성렬은 곧 일어나 나갔다.
"두 사람, 왜 그래?" 숙희가 물었다.
"몰라요. 자식은 내가 자꾸 피하는데도 계속 앞에서 얼쩡거리네... 질투심만 가득해 갖고."
"질투... 라면. 우리한테?"
"내가 누구랑 얘기만 하면 쫓아와서 머리를 들이밀어요."
"누구랑 얘기만 하면이라니."
"누구든 말예요. 반주하는 진희씨나 최 장로님네 딸이나..."
"운진씨 꾼 기질에 도저히 못 봐주겠나 부지."
"그런다고 지가 가로챌 수나 있나..."
"어?"
운진이 숙희를 봤다. "뭐요. 황이 얘기 좀 하자 하면 얘기 할 거예요?"
"어?"
"샘은 그런 데다 내는 게 아니죠. 더 잘 해보려고 노력해야 어필되지."
"저... 미스타 황이 나한테 말 건 적은 있어."
"그럼, 그렇지. 자식!'
"아주 대놓고, 왜 저런 나쁜 사람하고 다니느냐고." 숙희가 운진을 손가락질 했다.
"허허허!"
"그래서, 내가, 나는 좋은 여자로 보여요?"
"허허허!" 운진은 문득 열리는 도넛 가게 문을 무심결에 봤다.
진희가 병선 앞에 들어오면서 이쪽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숙희가 그 두 사람에게는 손인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