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숙희를 혼자 놔두고 나갈 수도 같이 나갈 수도 없는 바깥 상황에 생각만 하다 말았다.
'자식! 올라가면 되게 뭐라 하겠는데?'
운진은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내려서 숙희와 옆으로 섰다. "하이."
젊디젊은 여자가 정문을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오 마이 가앗!"
방에서 비 오는 것을 보지도 못했는지 그들은 사뭇 바닷가라도 나갈 차림새였다.
그들은 전혀 주저않고 라비에서 통하는 스위밍 풀 문을 향했다. 나이들은 끽 해야 높은 틴에이저들 같은데 몸은 이미 제 굴곡을 다 갖췄다.
서양 여자들은 몸이 일찍 발달하고 대신 일찍 쇠퇴하기 시작한다고.
운진은 엘레베이터 문을 잡고 숙희 먼저 타게 했다.
어느 한 사람이 부지런히 와서 그들과 같이 탔다.
"It's some kind of rain, isn't it? (좀 대단한 비로군요, 그렇죠?)" 그는 젖지않았지만 밖의 비를 직접 대한 모양처럼 말했다.
"Yeah. Looks like a hurricane. (네. 허리케인 같네요.)" 운진도 가볍게 응수했다.
그 서양 남자는 3층을 눌렀다.
운진과 숙희는 방으로 올라오자 패디오로 갔다.
이제 모래사장에는 정말 아무도 없다.
노랑색의 패추롤 추렄이 지붕에 반짝이를 켠 채 지나간다. 아마도 백사장에 버티고 남은 사람들을 독려해서 쫓아 보내려는지.
쿠궁~
아주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여운이 바다에서 되돌아 왔다.
숙희는 운진의 팔을 얼른 끌어 안았다. "무섭다. 물러서자."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얼르은!"
"천둥 갖고..."
운진은 야영 계획이 틀림없이 취소되고 다들 귀가길에 올랐으려니 하고 싶다.
에이, 시이! 되게 걸리는데?
나중에 올라가서 이모가 되게 뭐라 하시겠는데?
숙희가 차차 몸을 붙이더니 그를 꼭 끌어안고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뿌지직!
그들의 눈 앞에서 번개가 내리 꽂혔다.
"악!" 숙희가 비명을 지르며 운진의 등에 찰싹 달라붙었다.
모래사장 한복판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와우!..."
운진은 번개가 땅에 꽂히는 것을 처음 봤다. "이런 날 바다에 나가 있는 거, 위험하네."
"문 닫지?"
"그래야겠는데..."
운진은 패디오 문을 천천히 닫았다.
번개와 천둥이 몇차례 연거퍼 발하고는 비가 현저히 죽어갔다.
운진은 그제서야 유리문에서 돌아섰다.
숙희가 그를 또 안으려고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운진은 이제 전혀 스스럼없이 숙희를 안았다.
운진이 몸으로 그녀는 밀며 유리문으로 향하니 숙희가 얼른 달라 붙었다. 그렇게 둘 사이는 옷 겉으로나마 스킨쉽을 구사하며 발정기를 돋구고 있었다.
"군대에서 밤에... 특히 전방은 밤에, 코를 앞에서 베어가도 모를 정도로 깜깜해요."
"무서운 얘기 하려구래?"
"비가 오는 밤이면 차라리 희미하나마 빛이... 그럴 때 번개가 치면 말예요. 번개가 하늘을 짜작짜작 갈라 놓는다는 말, 들어봤어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늘을 수천 갈래로."
"무섭겠지만, 멋있겠다."
"그럴 때마다, 아, 신은 정말 대단하구나... 저런 걸 어떻게 창조했지?"
"신도 또 하나 나왔다."
"그럴 때 종교가 따로 필요없더라구요."
"무슨 굔데? 헤헤헤!"
"참하느님 믿는 교?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