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오션 씨티에서 돌아온 지도 일주일이 지나갔다.
과수원 둔턱에서 내려다 보이는 포도원은 모든 일이 끝나서 조용하다.
그 곳과 과수원은 이제 봄이 올 때까지 긴 휴면기에 들어간다.
운진의 화원도 이제 남은 국화와 사철나무 들을 처분하고 나면 동면기에 들어간다.
과수원과 화원 사이에 일궈진 옥수수 밭에 바람이 불어 지나가면 이제 씨 받기 위해 남겨진 수숫대들이 으스스스 스치는 소리를 낸다.
운진은 그 밭의 옥수수들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그들이 이번 주 안에 와서 몽땅 따 가기로 되어있다.
숙희와 운진이 나란히 산책하는 도로는 이제 차량의 통행이 사라졌다.
숙희가 개의 목줄을 잡고 걷는다.
웬지 눈에 많이 익은 상황이다.
숙희는 새삼스레 긴장되어 운진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운진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다 봤다.
언뜻 화원 쪽 방향으로 빨간색의 차가 사라진 것 같다.
진희씨? 병선이?
운진은 과수원 집이 보이는 언덕에서 돌아섰다. "누가 온 것 같아요."
숙희도 개줄을 끌어 당겨서 돌아섰다.
"숙희씨 차... 안 바꿔요?"
"차? 아니?"
"그래요?"
운진은 숙희의 차가 많이 낡아서 삐꺽거리는 것을 몰고 오션 씨티를 다녀와서 그렇다.
진희와 병선이가 저들의 진로 문제에 대해 사촌형에게 의논하란다고.
즉 운진의 이모부가 둘을 보낸 것이다.
진희는 운진과 눈길이 마주치면 모로 꼬며 웃는다.
그녀만 아는 비밀 하나로 부끄러운 것이다.
한 때 오운진에게 온갖 거짓말을 하고 역으로 꼬셔보려 했었던.
영진이를 가운데에 놓고 줄다리기도 해 봤던.
이제 그녀는 아기를 임신했고, 양쪽 집안 어른들의 절차만 남았다.
그러니까 청소차 타는 오 집사와 정비소 하는 강씨가 미국 처음 와서 통성명 한 이래로 친하게 지내오는 바, 오씨 왈 다른 놈은 몰라도 조카 새끼는 맘놓고 권한다고.
전 집사와 강씨는 핑게 김에 사돈 맺어지면서 벗이 되는... 그렇게 되었다.
외아들과 외동딸이 맺어지는... 그렇게 되었다.
"지금 성네 집에서 아부지랑 이모부랑... 지니아버지랑, 술들 하셔."
"오랫만에들 어울리시네."
"울 아빠도 술 좋아하시는데, 그 간 대작할 사람이 없었다고..."
진희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면서 또 모로 꼬았다. 그냥 미스터 오가 가까이 있어서.
"그리구, 성, 오션 씨티에서... 아는 분들이 다 보고..."
그 때 어디서 차임벨 소리가 났다.
"오! 차이니스 푸드 왔다부다!"
운진은 핑게 김에 일어섰다. "말 소문이 뭐 중요하냐?"
"..." 병선은 말 이을 게 생각나지 않았다.
"참! 목사님이, 원래는 미스... 터 오, 꼭 나오랬는데." 진희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진짜, 성! 학습 문답 받고 세례 받으면, 청년회 회장 긴급 발동으로, 성을..."
"체! 너나 해!"
"난 자격이..."
"취미없다."
운진이 밖으로 나갔다.
숙희는 병선이라는 사촌의 눈빛이 의외로 맑음에 안심이 된다.
운진씨를 성 성 하면서 잘 따른다는...
숙희는 병선과 나란히 있는 진희가 한 때 운진에게 대쉬했던 것을 어렴풋이 안다. 흐...
진희가 두 손으로 제 배를 가만히 안았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6x146 (1) | 2024.07.07 |
---|---|
15-5x145 (0) | 2024.07.07 |
15-3x143 (0) | 2024.07.07 |
15-2x142 (0) | 2024.07.07 |
15-1x141 만나지기로 되어있는 사람들 (0) | 2024.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