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둘은 한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서 텔레비젼을 봐도 감흥이 일지않는다.
숙희의 어깨에 브래지어 끈이 나오고 앞가슴에 골이 패여도 운진의 눈은 지나간다. 왜.
그도 숙희와 결혼해서 첫날밤에 서로를 첫경험으로 발견하고 싶어서.
아니면. 그녀를 보내줘야 하는 경우가 생겨도 그녀는 상처가 덜 할 것 같아서.
몸까지 주었다가 헤어지는 일이 벌어지면 여자는 얼마나 힘들까 해서.
"사람들은 흔히 그러지... 남녀가 한방에서 밤을 보냈다고 하면, 당연히..."
숙희의 그 말에 운진은 새삼 영진이 생각났다.
남녀가 밤을 같이 보내면 무슨 일이 생기느냐고 모친에게 쏘아부치던.
'엄마 아빠나 혼전 관계로 오빠를 임신해서 결혼한...'
'나는 어림없어요! 절대로!' 영진의 귀여운 외침이 들려온다.
운진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걸요."
"왜 그렇게 확신하는데?"
"그게... 그리 쉽겠어요? 아무리 오래 사귄 사이라 해도, 쉽게 몸을... 전 아닐 것 같습니다."
"난 운진씨 처음 봤을 때 꾼으로 봤는데?"
"헤헤헤!"
"진짜루! 아주 날 슥 무시하는 척 하면서 궁금증 나게 만들고."
"누가 할 소릴 하십니까."
"나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랑 아주 좋게 지내고."
"누구요."
"말 안 해. 내 자존심 상할까 봐."
"내가 누굴 이용했지?"
"나더러 선봤다고 하던 날."
숙희가 새삼 약이 올라서 그를 때렸다. "글쎄, 나더러 선봤다고."
"그 때는 숙희씨를 약 올리느라 그런 게 아니라고, 몇번이나, 설명을..."
"그랬다가... 그 여자랑 잘 되어 버렸으면... 끝났을 거 아냐."
"..."
운진은 홧김에 누이에게 했던 말이 되살아나 찌른다. "정말 큰일 날 뻔 했네요."
"문제... 없는 거지?"
"아직 똑 떨어지게 그만이다, 라고는 안 했어요. 나도 잘 모르니까."
"역시... 꾼인데."
"아아... 아뇨. 그런 거 없었어요."
"여자가... 남자 잘 호리게 생겼던데."
"여자는 여자가 알아본다더니."
"운진씨 같은 남자 충분히 넘어가겠던데."
"그랬어야 한다는 얘긴지..."
"그랬느냐고 유도심문하는 거지!"
숙희의 말이 끝나기 전 운진이 하품을 크게 했다.
"할 말 없으니까, 하품은." 숙희도 하품을 크게 했다.
둘은 그저 큭큭큭 웃고는 이내 조용해졌다.
숙희는 이제 그의 보호가 좋아서 그를 향해 모로 누웠다.
자연히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눌리며 젖꼭지만 가려지고 다 나왔다.
이튿날 아침.
운진과 숙희는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아침 먹을 데를 찾아다니다가 바로 귀가길에 오르게 되었다.
실상은 운진이 어디 마땅한 곳으로 들어가려다가 부모네의 차를 발견하고 지나치다 보니 자연적으로 차량의 물결에 휩쓸렸고 그러다 보니 50번 도로에 들어선 때문이다.
둘은 가고 있는 길이 비단 두어차례 와 본 걸로 눈에 익은 것 같지는 않다는 착각을 갖는다.
아주 먼 옛날에도 지나갔거나 미래에 같은 길을 또 가는 그런 연상.
그들의 눈 앞에 각자 운전하며 가는 장면이 주욱 연결된다.
운진은 혼자 어떤 차를 몰고 가며 숙희를 생각하고, 숙희 또한 다른 차를 몰고 가며 운진을 생각하는데, 정작 둘은 서로 모른 채 엇갈려서 스쳐가고 있는 듯한 상황이 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몇년을 두고 서로 엇갈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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