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주차장에서도 흥섭은 숙희를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운진은 주위를 살폈다.
보아하니 숙희가 되게 꺼리는 상대 같은데, 사내가 눈웃음을 샐샐 치며 자꾸 옛이야기를 이어가려는 품이 그녀의 기를 죽이려는 것 같아서.
여차하면 한바탕 붙어야 하나 해서.
그런데 숙희는 흥섭의 떠벌리는 사투리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운진의 손을 찾아서 꼭 쥐었는데 이상하게 그의 손아귀에서 편안한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한숙희, 결혼은 했능가?"
흥섭의 한참 생글거리고 수다 떨던 말투가 갑자기 확 달라졌다.
운진에게서 흠 재밌네 하는 반응이 나갔다. 남의 여자 결혼했는지는 왜 물어.
'뭐야. 교관과 여대생의 염문?'
"여기 운진씨랑 약혼했어요."
"이잉... 행복한 청년이구만." 흥섭이 운진을 훑어보며 한 말이다.
운진이 숙희의 손을 놓았다.
"실례지만, 형씨의 춘추가 어케 되시요?" 운진에게서 막 꾸민 사투리가 나갔다.
말하자면, 듣다듣다 시비를 거는 것이다.
"시방, 내 나이를 묻는 것이요?" 흥섭이 노골적으로 어떤 자세를 취했다.
"뭐요, 이 친구." 운진은 숙희를 살짝 뒤로 잡아 당겼다.
숙희는 운진을 되려 잡아 당겼다. "그래요, 김 중위님. 만나서 반갑구요. 저희는 어디를 가야 해요. 이만 실례할께요. 또 봬요."
그래 놓고 숙희는 운진에게 빨리 와 하는 눈총을 주었다.
운진은 흥섭을 슥 훑어보고 돌아섰다.
끽 해야 4, 5단쯤 되겠군.
"어떻게 보면, 내가 고마워 해야 할 사람들 중에 한 분이야."
숙희가 차 안에서 하는 말이다. "내가 내 인생에서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아마 김 중위님이 그 중 한 사람일 거야."
"..."
"나에게 암흑 시기가 있었다면 있었는데... 그 때, 나를 아주 혹독하게..."
숙희가 손가락 끝으로 눈주위를 누르며, 고개를 바깥 쪽으로 돌렸다. "그 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합도 많이 주고... 시합에 나가서 지고 돌아오면 벌도 많이 주고..."
숙희는 김 중위가 남녀 구분을 안 둔다고 선수로 뽑힌 여러 명을 엎드려 뻗쳐 시켜 놓고 소위 빳따를 때린 일을 운진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을 하면, 아마 모르긴 해도 운진은 김 중위를...
'죽이려 들 것 같다!'
그녀가 아주 가끔씩 운진에게서 소름끼치도록 갖는 어떤 살기를 염두에 두면.
"대면하기 껄끄러운 상대면 말해요. 앞에 얼씬 못 하게 해 줄테니까."
"아니! 그런 쪽은 아냐!"
"나이도 별로 안 먹어 보이는 자식이..."
"이젠 다 지난 일인데, 뭐. 신경쓰지 마."
"숙희씨가 별로..."
"아냐. 그냥... 지금은 추억이다 할 수 있을 정도니까, 걱정하지 마. 그 때는 견디기 어려웠었다는 말을 하려 한 거야. 여기서 딱 한번 찾아 봤... 운진씨 알기 전에... 집에서 힘들었을 때."
'사내 자식이 간사한 게... 믿을 만한 놈은 아니겠구만.'
운진은 그가 모는 숙희의 혼다 차를 어느 샤핑 센터 주차장으로 몰았다. "개밥 좀 사구요."
숙희는 그제서야 고개를 바로 했다.
운진이 차의 발동을 끄고 숙희를 봤다. "괜찮아요?"
"응. 사이 나빴던 건 아니니까, 그냥 다음에 또 만나면, 그냥 편하게 대해줘. 응?"
"그러죠."
"흐흥. 김 중위... 가 두려워 하는 상대네, 운진씨가. 왜지?"
"뭐 별 거 아니겠던데..."
"하긴 운진씨 같은 막쌈패 한텐 못 당하지."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