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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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3. 03:43

   숙희는 파란 불로 바뀌어 차를 출발시키며 그 추렄이 지나간 사거리의 도로명을 읽었다.
그러니까 저리로 가도 화원을 만난다 이건가?
그녀는 이대로 가면 은행으로 간다 해서 아무데서건 유-턴을 시도하려고 기회를 찾았다. 
내가 이 은행에 근무한지가 언젠데, 그 동안 한번도 다른 길로 다녀보지않았어.
그녀는 다음 신호등에서 유-턴을 한 다음, 뜻 모를 다급한 마음에 그 짙은 색 추렄이 지나간 사거리에 와서 또 빨간불에 섰다. 
여기서 레프트 턴을 하면 그 추렄이 간 데로 가는 건데.
   숙희는 차선을 잘못 서서 좌회전이 안 되는 것에 괜히 신경질이 났다. 한숙희. 너 왜 이러니.
   너도 그랬잖아. 괜찮은 남자다 싶으면 이미 임자가 다 있더라고.
그녀는 괜히 아빠가 했었던 가게로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니. 
나이와 체신을 지키자. 
양품점 여자는 나 보다 어리고. 그리고 뭘 물어볼 정도로 친한 관계도 아니잖아?
차라리 아파트의 누나란 이를 만나? 아니. 
그건 완전히 속 들여다 보이는 거야.
그러다가 그녀는 하 하고 한가지 묘수가 떠올랐다. 교회!
   그녀는 파란불에 지나가며 혼자 속으로 무릎을 쳤다. 
왜 내가 그 생각을 진작에 못했지?
이 날이 월요일. 돌아오는 일요일까지는 6일이나 남았다.
   같은 시각 운진은 흙거름을 배달하고 받아온 돈을 누이에게 넘겼다.
   "얼마?" 운서가 돈을 흔들어 보였다.
   "안 세봤는데요."
   "너 답다. 그럼, 나도 안 세보고 넣는다?"
   "녜."
   "얘!"
운진은 뒷뜰로 가려다가 돌아섰다. "녜?"
   "너 손님이 와서 기다리셔."
   "손님이요? 어떤 손님요?"
   "안에."
   "안에요?"
   운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당겼다. 손님인데 안에 들어가 있을 정도면 누님도 다 아는 사람? 
누구야? 지니는 아닐테고. 혹시 영진씨?
운진은 밖에 강한 햇빛 아래 있다가 실내에 갑자기 들어서니 깜깜해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앞 방향에서 부시럭 소리가 났다.   
   "잘 있었나?" 나이든 여자의 목소리가 났다.
운진은 제 자리에 우뚝 멈췄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병선은 옛애인을 추렄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녀는 몹시 왜소한 체구에 얼굴만 앳띄어 보이고 예쁘다. "어디로 가냐니까?"
   "가 보면 안다니까? 하여튼 일단 가자구."
   "어디를 가는지 알아야 뭘 준비해야 하나 알지."
   "뭐 준비해야 하는 그런 데가 아냐."
   "설마... 집에 가는 건 아니겠지."
   "노." 
   "친척이야?"
   "친척이라기 보다는... 거의 나의 멘토."
   "여기서 학교를 안 다녔으니 선배 같은 것도 없을 테고."
   "하여튼.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잠자코 가자구."
   "오늘. 지금. 꼭 가야 해?"
   "글쎄, 잠자코 가자니까?"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니?"
   "하여튼 가 보면 알어."
   "우리 사이에 대해서 알어?"
   "그것 땜에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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