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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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3. 03:35

   운서는 아이 둘이 여름 방학 시작을 기회로 아주 오는 것에 좋으면서도 부담을 갖는다.
말은 운진이가 애들 뒷바라지를 책임진다고 하지만, 걔도 곧 제 삶을 찾을 텐데. 
괜히 운진이 말만 듣고 동의했나. 
운서는 자신도 모르게 모친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응, 엄마. 운진이도 곧 제 삶을 찾을 텐데. 내가 이 나이에 동생한테 너무 의지하는 건가?"
   "걔가 지 누나를 생각하는 게 특별하니까."
   "신기하지, 엄마. 운진이가 내 말은 듣는다는 게."
   "니가 다 거둬 키웠으니까... 정작 엄마보다 누나를 더 어려워하지."
   "커서도 그게 남아 있을까?"
   "니가 늦게라도 들어오는 날은 걔가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널 기다렸잖니."
   "흐흐흐." 
   운서는 입으로는 웃지만 잠깐 떠오르는 옛생각에 눈물이 고인다. "걔는 내가 저 땜에 고문 받고 그런 게... 평생..."
운서는 말하다 말고 서러움에 울음이 나왔다.
   "그럼! 안 잊지..." 
   그녀의 모친은 긴 한숨을 내쉰다. "나쁜 놈들. 그래 갖고 걔를 아주 최전방 최전방으로 보내서는 밥도 굶기고. 죽으라고 이북 놈들하고 쌈도 붙이고."
   "그것 보면 운진이가 그 기질을 숨기고 산다는 게..."

   숙희는 월요일이 공휴일이라 쉬면서 나갈까 나가지 말까 고민 중이다.
보면 볼수록 희한한 남자네.
숙희는 저번 날 밤에 공원에서 재회한 미스타 오를 말하는 것이다. 
감정을 극도로 조절할 줄 아는 남잔가. 아니면, 어떻게, 나한테 관심 같은 게 없나... 
나는 솔직히 반가웠는데. 전혀... 
아니면, 여자가 있어서 체면만 차리는 건가.
화원이 29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그녀는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서성거린다. 
아니면, 극도로 능란한 꾼의 수작에 내가 말려 들어가는 건가? 무심한 척, 나를 휘둘러?
내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나는 남자를 혐오하잖아. 
그녀는 일단 개한테 밥부터 주었다. 한숙희야. 정신차려. 이성을 찾아라.
그러나 그녀는 개를 집 앞 잔디에다 똥까지 미리 뉘이고는 집을 나섰다.
   미국은 메모리얼 데이가 여름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이 날의 기온은 그리 따뜻하지 않았고 바람까지 불어서 숙희는 좀 두터운 옷차림으로 무장했다. 그녀는 짝 붙는 조대시 청바지에 회색 후디를 입었다.
29번 도로면 내가 출퇴근 할 때 타는 길인데, 그 근처에 있었구나.
   숙희는 하늘색 혼다 투 도어짜리 어코드의 시동을 걸었다. 
에잇! 그냥 바람이나 쐬자.
그녀는 새삼 부끄러운 맘이 든다. 그의 화원이 찾아질지 모르겠지만, 정작 찾아갔는데 그한테서 냉대를 받거나 아닌 말로 이미 여자가 있어서 놀러 와 있다가... 
내가 꽃을 사는 것도 아닌데, 불쑥 들어서기가 참 민망하지.
고단위의 바람둥인가?
   그녀는 29번 도로를 타고 북상하다가 여기다 싶게 짐작되는 갈림길에서 직진했다. 웬지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을 탔다가는 돌이키지 못할 실수를 범할 것 같아서였다.
오늘 말고, 다음 번에.
아니, 한번 더 만나지면.
아, 근데, 암만 생각해도 여자 호리는데 도사같애.
   그녀는 마침 빨간 신호등이라 섰다. 돌아가? 유-턴?
그런데, 그녀의 눈에 몹시 익은 짙은 색의 추렄이 앞으로 가로 질러가는 것이었다.
허걱!
그녀는 그 추렄에 탄 사람을 자세히 보려 했다. 
그 남자다!
숙희는 하마터면 차의 클랰숀을 누를 뻔 했다. 근데, 내 가슴이 왜 이렇게 뛰냐.  
   그녀는 그 추렄이 간 방향으로 차의 핸들을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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