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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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4. 07:48

   영란이 부친에게 붙들려서 말 몇마디 나누다가 나중에 쫓아간 그 어느 방은 그 오운서란 여인과 사촌동생이란 사내가 이미 가 버린 후였다.
   에잇! 
영란은 부질없지만 울화가 치밀었다.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녀는 부친에게 엉뚱한 화풀이를 했다. 앞으론 성가대에 안 나간다고.
   "아니, 왜?"
   "왜 없어요! 그냥요... 재미도 없고."
영란은 홱 토라져서 집으로 먼저 갔다.

   이튿날도 숙희는 출근길에서 찻길들을 살펴봤다. 혹시나 그 추렄이 또 지나가나 해서.
나 이러다 혼자 재미붙이겠네.
   숙희는 운전하면서 혼자 흐뭇하다. 
누군가를 알고 싶어하고 그 누군가를 혹 만날까 하고 기대한다는 자체가 나한테는 큰 발전이니까. 
발전한다는 것은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그 미스타 오도 날 궁금해 하지않나? 
그녀는 가만 생각해 보니 억울하고 분할 것 같다. 
그는 다른 여자와 시간을 잘 보낼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그리워...
헥!
숙희는 속으로 웃었다.
한숙희. 니가 누구를 그리워 해? 오오. 그렇다면 제법이네.
나는 평생 남자를 머릿속에 넣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남자가 내 머릿속 뿐만 아니라 슬슬 내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어떡하지. 나 꾼한테 물렸나 봐.
   그녀는 일하면서 자연 콧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그녀는 그 은행에서도 연인이 있나 없나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한국에 있는 약혼자를 기다린다고 똑같이 말하고, 오오 하는 감격들을 등 뒤로 받는다.
이제 언제 오느냐고 묻기 시작하면 난 일 났다. 흐흐흐.
   숙희의 얼굴이 조금 펴지는 것을 가족들이 알아챘나, 공희모가 가장 먼저 손을 벌였다. 
   "두고두고 보니까, 증말... 밥값 정도는 내놓아야 정상 아니니?"
숙희는 가진 돈에서 이백불을 선뜻 내놓았다.
   "이번에 일 하는 은행은 임금이 좀 싸네요."
   "그러게 먼젓번 은행에서 왜 그만뒀는데."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요."
   "남들도 다 그러고 다닌다. 너만 땍출나게..."
   "겨울에 몇번 혼나고는 덧정 없네요."
   이제 숙희는 공희모에게 그렇게 말이 나온다. "주급 올라가면 더 드릴께요."
한편 한씨는 코너 가게를 시작하고 꼼짝없이 묶였다.
그로서리란 것이 칠일 오픈하는데다가 주위에 경쟁이 생기면 골치다. 게다가 인근 가게에 새 주인이 와서 손님을 끌려고 할인 판매를 시작하면, 주민이라는 흑인들이 그리로 몰려간다.
그리고는 이쪽 가게를 약올린다.
저기서는 이 값에 파는데, 왜 당신은 비싸게 받느냐고.
그러면 손님 뺏기기 싫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출혈 경쟁이 시작되는데.
한씨는 가게를 닫으면 닫았지 그런 꾀임에 안 넘어간다고 버틴다. 
   장난하는 거야, 요 흑인 새끼들이!
한씨의 고집은 아무도 못말린다. 그는 계속 받을 값을 받겠다고 버틴다. 자연히 매상이 즐어들고, 매상이 줄어들면 집에 들여오는 돈이 줄어든다.
그래서 공희모가 숙희에게 손을 벌린 것이다.
한씨는 그 말을 듣고도 딸에게 암말 안 한다.
그래도 숙희는 원래 비겁한 아버지인 줄을 아는지라 구태여 탓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그녀는 집에다 돈을 내놓은 것 때문에 그녀를 가만 놔두는 것이 더 고맙다.
그녀는 그러면서 계모가 수그러드는 듯한 분위기에 두 상반된 감정이 든다.
이젠 늙으셨나? 그래서 기백이 줄어드시나? 
아니면, 또 다른 뭘 시작하려고 생각하느라 조용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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