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재회들
숙희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갈림길을 유심히 봐두었다.
그 다음에 만나는 그 사거리를 일부러 천천히 지나면서 어디로 어떻게 통하나 살펴봤다.
그러면서 혹 그 추렄을 다시 볼까...
'퇴근할 때 저리로 들어가 볼까?'
그녀는 이제 머리를 흔들어서 생각을 떨구려 하지않는다. 추렄이 있는 김에 남의 짐을 실어다 줘도 황송한데, 침대를 실어와서 정리까지 해 주는 경우는 아무래도 드물지.
혹시 나한테 관심 있어서 친절한 거 아닐까?
비록 여자가 있는 것 같지만, 혹 누가 알어.
숙희는 하루 종일 근무하면서 혼자 성을 쌓고 허물고 한다.
그 미스타 오란 사내는 말은 잘 안 하는데, 언뜻 보기에 누나한테 잘 하는 것 같았다.
그 뜻은 여자를 잘 대할 줄 안다는 것 아닌가.
아이. 그 때 성가대 얘기 할 때 어디 교회냐고 물어나 볼 걸.
숙희에게 그 날 따라 하루가 길었다.
한편 영란은 메조 쏘프라노에 속한 오운서란 이를 계속 접근해 보려 하는데, 그녀에게서 전혀 틈이 안 보여 답답하다.
남동생분 왜 성가대에 안 나와요 하고 물으면 가장 간단한데, 그 간단한 물음을 던질 기회가 왜 그렇게 없는지.
게다가 그 사내는 청년회에서 이런 저런 행사를 가져도 콧배기도 안 보인다.
그러다가 영란이 알아낸 것 한가지.
화요일 저녁에 청년회와 중장년회의 모임이 교회에서 열렸다.
영란은 아랫층 친교실에서 서성거리며 그 남자를 마주칠 기회를 찾았는데...
교회 내의 여러 모임 방을 기웃거리며 다니다가 테너에 속한 남자 하나가 오운서란 이에게 인사하며 성 어쩌고 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누님. 성 졸업식에 가시죠?"
"가야지, 그럼!"
영란의 귀가 무슨 졸업식 하고 번쩍 띄였다.
"그 날 몇시에 가실 거예요?"
"운진이는 여덟시 반까지 간다던가... 참관인은 열한시니까."
"주차 문제도 있고 하니까, 일찍 가셔야죠."
"그러니?"
"한 차로 가죠. 주차 문제도 있고."
"왜. 니 차로 다 갈 수 있니? 니 차는 투 도어짜리 스포츠 카인데."
"집에 세단을 쓰..."
"너 뭐 있구나? 뭐, 나한테 아첨해야 할 일이라도 있니?"
"에이, 누님도."
"너 요즘에 니 사촌형 보러도 잘 안 오네?"
"성 요즘... 맘이 맘 아닐 거예요."
"왜. 그 젊은 여자 때문에?"
"그 집에서 성을 함부로 보고 막 대하니까... 성 승질에 같이 대하지 못하고 혼자 속으로 삭히는 거죠... 에이, 성한테 막 소금도 뿌리고."
"사람한테 소금을 뿌려."
"성한테 아는 척은 마세요. 성한테 말했다가 제가 입 놀린 거 알면..."
"그렇잖아도 요즘 들어 운진이가 조금 신경질적이 되어 간다 했는데."
"신경질적 뿐만이 아닐 거예요. 성, 승질을 죽이느라 아마..."
"우리 운진이는 여자에 대해서 초월할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도 아주 안 좋게 헤어졌거든. 둘이서 죽고 못살았는데... 운진이는 부득이 한국을 떠야 했어서."
"사실 제가 보기엔... 여기 왔었던 아줌마의 딸이 성을 약올린 것 같아요."
"그러니?"
"성 잘못 건드리면 국물도 없는데..."
"미국 와서 조용히 살려는 앨 왜들 건드리는지..."
"여자애들이 성을 가만 놔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