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몸이 가벼워진 것은 약 탓이겠고, 마음이 가벼워진 것은 운진과 속읫말을 주고받고 난 이유이다.
이제 그녀는 운진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변치말자는 약속도 했고, 결혼은 모든 이들이 다 좋다 할 때 그 앞에서 하기로 합의도 했어서 회사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차차 사무적이고 어떻게 보면 얼음같이 느껴지도록 냉정해져 간다.
전처럼 사람을 보면 특히 남자를 보면 혹 해치려 들면 어쩌나 하던 과대망상적인 두려움 내지는 피해의식이 가라앉고 나니 어쩌다 업무 관계로 토론이 벌어질 때 자신의 의견을 과감히 발표하고 이견이 있을 때 부담감 없이 질문도 던진다.
그녀는 같은 층에 근무하는 동료 사원들이 차차 다르게 다가옴을 많이 느끼기 시작한다.
그녀는 퇴근 때가 다가오면 전처럼 가도 되는지의 눈치를 보던 것을 지양했다.
그녀는 다섯시가 되면 그날 그날의 방 상태에 따라 방문을 열어놓기도 하고 잠그기도 한다.
그리고 회사 건물을 당당하게 나선다.
그렇게 만 일주일이 순식간에 흐르고.
어떤 여성의 제안으로 인한 청년회의 단풍놀이 겸 친목회가 교회의 재가를 받았다.
운진이 밴 버스를 운전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다른 장로 한 사람이 동승하기로 하고.
아침 아홉시 정각에 다 모이든 늦는 사람이 있든 출발하기로 되었다.
숙희는 운진이 고집하는 통에 앞 자리에 앉아야 했다.
"이 자리는 길 잘 아는 사람이 앉아야 도움되고 잘 가지."
"그냥 있어요."
운진이 머리 위의 뱈미러를 봤다. 어? 저... 자식이 이리로 오는 건가?
운진은 흥섭을 봤다고 여겼다.
흥섭이 그의 아내와 함께 밴 버스에 올랐다.
운진은 숙희를 슥 한번 보고는 시선을 앞으로 보냈다.
저 앞에 흰색의 작업추렄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황... 성렬이도 오나?
운진은 재미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식들이 밸이 없는 거야.
아니면, 원래 세상살이가 싸운 건 싸운 거고 놀러가는 건 또 놀러가는 거다 이거야?
아닌 말로 이런 게 다아 벌어지기로 되어있는 일이야?
성렬은 밴 중간문으로 해서 뒤로 가 앉았다.
병선이와 진희가 같이 왔는데, 흰색의 비닐백을 들었다.
"어, 언니 왜 그 앞에 앉았어요?" 진희가 숙희의 어깨를 흔들었다.
숙희는 운진을 봤고, 운진은 슬그머니 외면을 했다.
그래도 숙희는 그 자리에 그냥 앉아 가기로 했다.
진희가 권하는 뒷좌석에 김 중위도 있고 미스터 황도 있어서이다.
정각 아홉시.
인솔자 장로 양반이 마지막으로 타며 밴 문을 닫았다. "가세!"
운진은 밴의 시동을 걸었다.
야, 간다아 누가 그렇게 탄성을 질렀다.
"미스터 오가 길을 잘 아는 거지?" 인솔 장로 양반이 다짐한다.
"녜!"
운진은 밴을 후진시켰다.
누가 밖에서 밴의 몸체를 두드렸다.
운진은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고는 거울을 보고 장로 양반을 보고 했다.
"쟨 최 장로네 아들 아냐?"
장로 양반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군대 제대하자마자 왔다는데, 애가 싸가지야."
그러나 밴의 문은 열리고 영호가 탔다.
영호가 성렬의 옆 자리로 가서 앉았다.
운진은 어떤 활극 같은 장면이 연상되어 속으로 웃었다.
군대 갓 제대했다는 놈이 저 정도면 그 전에는 별 볼 일 없었겠구만! 쪼다 새끼!
운진은 밴의 기어를 드라이브로 넣고 개스 페탈을 꾹 밟았다.
밴 버스는 힘차게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