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16-9x159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8. 10:00

   동굴을 안내하는 레인저의 차례를 기다려서 한바퀴 도는 코스는 정확히 45분 걸린다고.
동굴을 오르내리며 
멀리서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레인저를 연신 보며
숙희는 운진의 손을 꼭 잡고 무섭다는 느낌으로 사방을 구경했다.
코스마다 앞의 레인저가 불을 켜고 뒤의 레인저가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등등.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번 게다가 근무 연수만큼 똑같은 말을 반복했겠건만 미소를 잃지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번 들었을 바보 같은 질문도 또박또박 대답한다.
동굴에서 내려갈 수 있는 만큼 허용됐다는 바닥은 물로 칠척거렸다. 
그 다음부터는 내려온 만큼 올라가야 했다.
숙희는 운진이 미리 알아서 밀어주는 대로 염체 불구하고 등을 맡겼다.
이상하게 두 사람 주위에 아무도 꼬이지 않았다.
내려오는 계단을 옆으로 하고 올라가니 처음 모여서 차례를 기다렸던 방이 나왔다.

   그 다음 코스가 골동품 차 박물관.
거기서도 숙희는 운진의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병선이가 동굴에서는 진희와 따로 다니다가 박물관에서는 손을 잡고 다녔는데. 
사촌형과 마주치면 슬그머니 놓는 것이었다. 아니. 
진희가 부끄러워 하며 손을 놓은 것 같았다. 이제는 애를 배었으면서도 운진을 보면 지난 일 생각에 아직도 부끄러운 모양.
운진은 진희가 이제 고의적으로 훼방놓는 말을 즉 예를 들면 영진을 언급한다던가 하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 고맙다.
박물관을 나오니 어느 덧 세시가 훌쩍 넘었다.
아홉시에 교회를 출발해서 동굴까지 오다가 쉬고 먹고 모두 합쳐서 처음 세시간이 소모되었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근 한시간.
동굴 구경이 근 한시간.
박물관 구경이 그럭저럭 한시간.
가을 해는 일곱시면 꼴깍 넘어간다.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를 속성으로 돈다 해도...
그런데 여성들이 싸 가지고 온 음식들이 상하겠다고, 주차장 한켠에 만들어진 피크닠 테이블로 우우 몰려가서 한상씩들 차리는 것이었다.
거기서 먹고 마시고 떠들고 기운들을 차려서 밴 버스에 타니 그림자가 길어졌다.
어쨌거나 이래 가나 저래 가나 집에 가려면 어차피 걸리는 시간은 거의 동일.
밴 버스는 동굴 앞길을 따라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사인판 방향으로 꺾였다.
드라이브로 연결되는 톨게이트에서 4불을 달라 했다.
   반은 지고 반은 남은 산등성이의 단풍은 석양빛에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부지런히들 보라구!" 장로 양반이 소리쳤다.
아닌 게 아니라 밴 버스가 제법 올라가기 시작해서 저 다른 산으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교회 버스는 능선을 따라 돌고도느라 석양를 봤다가 어두운 계곡을 봤다가 반복하다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느낄 즈음에는 헤드라이트 켠 차들과 마주치기 시작했다.
   해 지는데 올라오는 차들은 뭔가.
   동네 사람들인가.
   뒤늦게 길 찾고 부지런히 올라오는 방문객들인가.
운진은 밴 버스의 헤드라이트를 켰다.
약 15도 정도의 경사길을 달려 내려가는데 주위는 이제 밤이 되었다.
노래 틀라는 요청도 없고.
차 안 사람들은 하루 종일 떠들고 하더니 다들 피곤한지 잠이 들었다.
숙희는 차에 꽂힌 테이프를 꺼내 달라 해서 워크맨으로 들으며. 
유령같은 형상으로 비탈길을 비추는 헤드라이트만 열심히 쫓아갔다. "운진씨, 졸려?'
   "아뇨. 괜찮아요. 눈 좀 붙여요."
   "괜찮아. 나까지 자면 운전하는데 힘들잖아."
   "노래나 한 곡조?"
   "떽! 앞 봐!"
   "노래는 할 줄 아세요?"
   "앞이나 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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