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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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8. 10:01

   수고많으셨어요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단풍 구경 잘 했시다
   동굴 구경 정말 좋았어요
   내일 뵈요
   안녕히 가세요
무수한 인사들이 깜깜한 교회 주차장에서 난무한다.
운진은 단풍 구경 잘 했시다 하고 말한 것이 영호임을 알았다.
   건방진 새끼! 끽 해야 스물 넷, 셋, 다섯? 군대 이제 제대하고 온 놈이.
그리고 운진은 여행 내내 입을 테이프로 봉한 듯이 침묵으로 시종일관이었던 흥섭을 봤다. 
흥섭은 숙희가 있는 방향이면 의식적으로 외면하는 기색이었다.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환경에 의문투성이라 늘 의기소침해 있었을 여학생을 교관이랍시고 군기 잡았을 게 뻔한 자식! 
   응큼한 새끼!
숙희는 어둠 속이었지만 운진이 김 중위가 있는 방향을 마치 먹이를 노리는 짐승이 지켜보듯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슴이 철렁했다.
   왜 그럴까.
   김 중위님이 나한테 했던 짓들을 아나.
숙희는 그럴 때 나타내는 운진의 거친 분위기에 오히려 안도감을 갖는다. "우리, 안 가?"
   "어!"
   운진이 얼른 당황하는 척 한다. "가야죠!"
아마도 밴 버스 열쇠를 안에다 반납하고 옆문으로 나온 장로인가 보다.
안 보이는 방향에서 차 한대의 시동 걸리는 소리가 났다.
이제 주차장에는 숙희와 운진이 타고 갈 혼다 승용차만 남았다.
   "뭐 먹으러 갈까요?"
   "날씨가 선선한데 아직도 냉면을 팔까? 그리고 이 시간에?"
   "팔겠죠?"
   "그럼, 우리... 먼저 거기."
   "냉면하고 불고기. 갑시다!"
   "힛!" 숙희는 어울리지도않게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둘은 불고기 이인분에 냉면 한그릇씩을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 나서야 다른 테이블에 영호와 그의 가족이 있음을 알았다.
운진은 최 장로와 눈길이 마주쳐서 인사만 보냈다.
영아가 누군가 하고 돌아보다가 이쪽을 알아보고는 손을 마구 흔들었다.
운진도 손을 살짝 흔들어 주었다.
   너희들 침입껀은 아직 보류 중인 것 잊지 마라.
   언제고 케이스를 다시 열어달라 하면 열게 되어있단다.
   왜냐고?
   언제고 써 먹을 때가 닥치면 딱 써 먹으려고!
운진은 영호가 이리저리 똥폼 재는 것을 보다가 시선을 치웠다.
그 새 숙희가 먹은 것을 돈으로 지불하고 돌아왔다.
   "가, 운진씨. 나 이제 피곤해."
   "그럽시다!"
운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영호의 시선이 이쪽을 훔쳐 보는 것을 알았다. 아니.
숙희를 슬쩍 훑어보는 것을.
   저 자식을!
운진은 영호를 째려보다가 영아와 눈길이 마주쳤다. "하이!"
영아가 몸으로 인사도 하고 손도 높이 들어서 흔들고 했다. 
열서너살 소녀가 어떤 아저씨를 보고 좋아서 반기는 모습이었다.
운진은 그럴 때마다 갖는 이상한 기분에 사뭇 가슴 한 구석이 지릿지릿 저린다. 미친 놈!
숙희도 이상했는지 장로 가족 자리를 흘낏 봤다.
영아가 숙희에게도 인사하며 손 흔들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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