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운서언니 곁에 서서 소리 들리는 대로 똑같이 따라 불렀다.
그리고 다시 아랫층 친교실로도 언니를 따라 내려오니 거의 모든 청년회 성원이 에워싸는 것이다.
미스타 오 왜 안 나왔느냐고.
일이 있어서 못 나왔어요 하고 숙희는 일일히 응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녀는 보았다. 김 중위가 일부러 멀리 돌아서 지나가는 것을.
이제 와서 생각하니 김 중위가 단체 기합이랍시고 태권도 시합에 나갈 선수들을 엎드려 뻗쳐 시켜놓고 여자라고 구분없다며 빳따로 때렸을 때, 절대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을...
그 때 숙희는 볼기를 빳따로 맞은 아픔보다도 수치심에서 죽고 싶었었다.
그리고 시합에 나갔다가 준우승으로 그쳤을 때, 학교 운동장을 끝도 없이 뛰게 해서 결국 탈진으로 쓰러지도록...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게 다 아빠의 짓이다.
내가 아들 아닌 게 내 잘못인 것처럼.
"저 사람이야. 운진이한테 혼났다는 사람이."
운서가 김 중위가 사라진 문을 가리키며 한 말이다.
숙희는 공상과 회상에서 깨어났다.
"아, 네." 숙희는 그 김 중위가 화원으로 전화를 걸어온 경위가 궁금했었지만 결과는 운진이 나갔다 들어온 것이 바로...
"바보 아니니? 그걸 밝히다니."
"네?"
"운진이한테 이유도 없이 맞았다고, 장로회에다 일러바쳤는데, 기각된 거야."
"네에..."
"이유는 몰라. 장로회에서도 우리 운진이를 안 건드리려 해."
"왜요?"
"몰라, 나두. 무슨 이유가 있나 봐."
숙희는 그녀가 운진에게 장난 비슷히 던진 말이 맞는가 보다고 여겼다.
모두 돈의 위력이야라고.
이제 서른 넘기는 청년이 벌써 밀리언을 논하다니, 화젯거리인 것이라고.
화원인지 과수원인지 일이 있다는 운진의 핑게는 곧 알아졌다.
병선이가 헬퍼 한명을 데려와서 과수원 본집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병선이의 우려대로 건물은 손 대지않고 벽만 뜯어내고 새로 하기로.
추렄 두 대에는 뜯어져 나온 쓰레기가 벌써 가득 실렸다.
숙희는 먼지가 나서 손가락으로 코를 막은 채 구경했다.
진희가 빨강색 스테이숀웨곤을 몰고 왔다.
"자아! 식사들 하세요?"
진희가 양손에 비닐백을 들고 왔다. "아, 언니 벌써 왔어요?"
"네. 그 새 뭘 사 와요?"
"교회 끝나자마자요."
그 때서야 운진이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
그 뒤로 병선이도 나왔다.
"뭐 알고 하는 거 같아요?" 숙희가 병선이에게 농처럼 말을 건넸다.
그녀는 이제 병선에게만큼은 말을 먼저 건넬 정도로 친숙함을 느낀다.
병선이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우리 사촌형을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데?"
엉망인 방 한쪽에 깨끗한 밬스가 펼쳐졌다.
모두들 거기 앉아서 음식들을 하나씩 받는데, 숙희도 가서 앉았다.
운진이 비닐백을 뒤지더니 그릇 하나를 꺼내어 숙희 앞에 놓았다.
"이거, 뭔데, 요?"
"짬뽕일 걸요?"
"오오."
숙희는 괜시리 다른 이들의 눈치를 봤다.
그녀는 행여 남이 빼앗아 갈까봐 스타이로폼 컨테이너를 끌어당겼다. 역시 우리 운진씬!
운진은 늘 그렇듯 짜장면 곱배기.
병선이와 진희는 무슨 중화요리에 밥 두 개.
그리고 헬퍼인 사내는 중국인이 만드는 야릇한 볶음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