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운서언니의 리드에 따라 조그맣게 발성연습을 했다.
진희는 음성이 고음이라 영란 옆에 섰다. 그리고는 영아의 반주가 틀릴 때마다 악보로 얼굴을 가리고 웃으며 뒤에 섰는 병선에게 악보를 짚어 보였다.
"둘이 그럴려면 나가!"
결국 운진의 손가락이 병선과 진희의 머리를 콕콕 찍었다. "언니가 옆에 계신데!"
숙희는 운진의 그런 동작을 재미있게 보았다.
그리고 영란이 약 오른 기색으로 옆의 진희를 봤다.
인원이 조금 늘어난 성가대원들이 목사석 뒤로 줄 맞춰 들어왔다.
목사가 그냥 눈으로 그들을 보다가 손을 높이 들었다.
운진은 얼른 구십도로 인사했다.
목사가 앉은 자세에서 팔을 길게 뻗었다.
운진은 목사의 악수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목사가 한참 후에 손을 풀어주었다.
병선이는 그 다음 제 차례일 줄 알고 악수할 자세를 가졌다가 말았다.
목사께서 병선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목사가 숙희를 보고는 일어섰다.
"처음 뵙는 얼굴이신데?"
목사가 숙희에게 악수를 청했다. "뉘집 식구이신가?"
운서가 인사를 공손히 했다. "제가 아는 손 아래 친구입니다."
"아, 네에! 반가워요!"
목사가 숙희의 손을 잡고 크게 흔들었다.
그 다음에 영란을 볼 줄 알았는데, 목사는 자리에 도로 앉았다.
그리고 그는 몸을 흔들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만에 교인들의 얼굴에 흐뭇한 표정들이 피었다.
이 날 성가대가 아주 오랫만에 훌륭한 음성들로 감동시킨 것이다.
예배가 끝나고. 교인들은 아랫층 친교실에서 성가대 칭찬들로 입에 침이 마른다.
그리고 여전도회의 건의로 진희를 다시 반주자로 하자는 안건이 올랐다.
진희는 이미 병선과 나간 후였다.
그런데 운진이 그냥 지금의 반주자를 잘 키우자고 나섰다.
그것이 영란에게 얼마나 반가운지.
영란은 동생 영아를 앞에 세웠다. "얼른 미스타 오 아저씨께 고맙다고 인사 드려."
영아가 미스타 오 아저씨한테 크게 인사했다.
운진은 이 기회에 진희에서 다른 이로 반주자를 굳혔으면 하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그가 아는 한, 진희는 남자를 너무 자주 바꾸고.
게다가 그가 짐작컨대, 새로 만나는 남자마다 적어도 두세번 째의 데이트에 동침하지 싶다.
이번에도 병선이가 여름에 바쁘니까 못 만나는 새 화원에 박이랑 종종 어울렸고, 박이 뉴 욬으로 갔고 병선이가 조금 한가해져서 얼굴을 내미니 그와 어울린다.
아마도 운진의 그런 무언의 압력 때문에 진희가 병선이랑 내뺀 모양이다.
숙희는 운서가 권하는 대로 그 날의 특식이라는 호떡을 들었다.
운진이 두 여인 앉은 자리로 커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가 호떡을 두 개 더 가져왔다.
"이 호떡 여기서 직접 만드는 거예요?" 숙희는 호떡을 하나 더 받으며 운서에게 물었다.
"부인회에서 주일마다 돌아가며 특식을 제공하거든."
"아, 네."
"여름에는 시원한 콩국수도 했고. 이제 찬바람 불면 수프에 김밥."
"아, 네."
운진은 자연스레 숙희와 가까이 앉아서 두 여인의 대화하는 모습을 번갈아 본다.
숙희도 이젠 운진이 곁에 있으면 낯선 자리가 덜 어색하다.
누가 푸쉬하는 것도 아닌데, 두 남녀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간다.
숙희의 운진을 훔쳐보는 눈빛이 맑아져 갔다.
운서는 남동생과 미쓰 한을 눈여겨 봤다. 그렇지만 좋은 후광이 비치는 것은 아니었다.
미쓰 한의 불운이 더 세서 운진이를 가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