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17-8x168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5. 01:28

   숙희는 집 앞에 와서 운진더러 차 한잔 하고 가라 해야 하나 하고 망설였다.
그런데 그가 순순히 돌아서서 가는 것이다. 
   "담주 일요일날도 교회에서 뵙는 거죠?"
   "생각... 해... 네!" 숙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가 추렄에 바로 올라타고는 부릉거리며 집 앞을 떠났다.
숙희는 그의 추렄이 약간 비탈진 언덕을 다 내려가도록 지켜봤다.
   싹싹하게 구는 게 정말 꾼인가 본데?
   친절이 몸에 배인 척 해서는 내 마음을 자꾸 흔드네?
숙희는 운진에게 무너져 가려는 마음을 자꾸 일으켜 세운다. 저 정도의 남자인데 여태 여자가 없다는 게 수상해. 하지만 조심하자 하면서도 내가 먼저 끌리는 것 같잖아?
   공희모의 숙희에 대한 눈초리가 곱지 못하다.
걸을 만하면 가게에 나와서 장사하고 나 좀 들어앉아야겠다 하며.
   "저 곧 일자리 찾을 건데요."
   "어차피 너 어디건 진득하게 못 있잖아."
   "이젠 잘 할 거예요."
   "니 동생 다리 절뚝거리며 고기 썰러 뛰어다는 거 못 봐주겠다. 너 나와."
숙희는 부친을 원망스런 눈으로 봤다.
한씨는 계속 눈만 내리깔고 있을 뿐이다.
진짜 비겁한 남자!
어쩌면 평생을 저렇게 비겁으로 똘똘 뭉쳐서 살까.
   "알았어요, 어머니. 오늘 엨스-레이 찍었는데요. 결과 나오는 거 보고 움직일 게요."
   "아니면, 돈 벌어오던가!"
   "네!" 숙희는 돈 버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크게 대답했다.

   숙희는 미국 신문을 뒤지면서 아무 구인 광고건 동그라미를 쳤다. 
이제는 보수도 형편없으면서 까다롭기만 한 은행은 그만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한 가지 눈을 끄는 광고를 보았다.
   비지네스 애날리시스. 즉 비지네스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직업.
그녀는 그 전화번호로 당장 걸었고.
그 쪽에서 인터뷰 날짜를 주었는데.
   '어떡하지. 내 다리가 아직 불편한데...'
그녀는 망설이다가 에잇 하고는 운서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분하고 얘기할 게 있어서 그러는데, 연락 좀 전해달라고.
   그리고 운진이 숙희를 추렄에 태우고 워싱톤 디 씨의 어느 건물로 데려가 주었다.
거기서 원서를 써넣고.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굵은 뿔테 안경 쓴 백인 여자의 인터뷰를 받고.
   [우선 정규는 아니고, 시간당 20불로 시작하겠으면 다음 주 월요일부터.] 그 결정을 듣고 숙희는 저도 모르게 운진을 간절한 눈으로 봤다.
   "해요. 다리 곧 나을 거잖아요. 그 동안 내가 발이 되어드릴께요."
   "그래도 돼요?"
   "대신 수첩에 잘 적어놓으세요. 밥 몇번 먹여줘야 하나."
   "그 밥은, 참..." 
   숙희는 저도 모르게 운진을 가볍게 안았다. "만일 그런 식의 데이트 신청이면 거절."
   "겸사겸사."
   "어쨌든 너무 고마워요."
   "녜에, 녜!"
숙희는 인터뷰 한 여자에게 알았다고, 월요일에 출근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때까지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 백인 여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녀가 숙희에게 악수를 청했다. "월컴 어보드."
   "땡 큐!" 숙희는 아주 힘차게 악수에 응했다.
   "혹시 배우신 거 이제 써먹는... 맞죠?"
운진의 그 말에 숙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아세요?"
   "그런 게 있어요."

'[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10x170  (0) 2024.07.25
17-9x169  (0) 2024.07.25
17-7x167  (0) 2024.07.25
17-6x166  (0) 2024.07.25
17-5x165  (0) 202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