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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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9. 07:36

   운진은 벽 세울 드라이월을 재다가 병선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성, 저기 하고.
운진은 춥지만 먼지 때문에 열어놓고 일하는 과수원 집 문을 쳐다봤다.
숙희의 하늘색 혼다 차가 와서 섰다.
운진은 연필로 금 긋던 일로 돌아갔다.
차에서 내리는 숙희는 정장한 모습이다.
운진은 T-자를 척 걸치고 툴 파우치에서 유틸리티 나이프를 뺐다.
숙희가 문 앞에 와서 섰다. "추운데 문 열어놓고 하네?"
   "..." 운진은 칼로 드라이월을 주욱 긁었다.
병선이가 성 하고 조그맣게 불렀다.
   "나, 회사... 잠깐 나갔다... 잠깐 들러보려구."
숙희의 말에 운진은 대꾸없이 잘라진 드라이월을 번쩍 들었다.
그가 그것과 함께 코너로 사라져 버리고.
숙희는 문 앞에 있다가 돌아섰다.
운진은 병선더러 먹을 것 좀 사오라고 시켰다.
   운진은 병선이가 나가서 사 온 맼다널즈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는다.
   "성."
   병선이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식 올릴 때..."
   "영진씨 만나지면, 영진씨랑 들러리 서 줄께."
   "..." 병선의 눈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운진이 조금 남은 것을 둘둘 말아서 쓰레기들 있는 데다 던졌다.
   씨발! 도저히 못 믿겠어!
   잘 빠지고 젊으니까 즐긴다... 좋다, 이거야! 거짓말은 하지 말라 이거야!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한다 이거야!

   숙희는 라비에서 기다리다가 전무급 상사의 사무실로 오라는 전갈을 경비로부터 받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뱃지만 반짝이면 중간문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이제 숙희는 경비에게 방문한 목적을 말해야 했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기다리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삼십분 정도를 기다리니까 그것도 인터뷰하러 오라고...
숙희는 저절로 열리는 문 앞에서 되돌아섰다. 
   우리 운진씨 말처럼 뭐 하자는 수작들이야!
그 길로 화원으로 돌아온 숙희는 평복에 운동화를 신고 차를 과수원으로 몰았다.
그녀가 두어시간 전에 잠깐 들여다 봤을 때만 해도 벽이 듬성듬성 구멍투성이더니 그 새 사방이 하얀 벽으로 다 막혔다. 그러고 보니 방 안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성 하고 병선이가 어디다 대고 소리질렀다.
어디서 운진의 노기 서린 웟 하는 고함이 들려왔다.
   "저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병선이가 운진의 대답 소리 난 방향을 가리켰다.
숙희는 쓰레기가 여기저기 쌓인 것을 살펴 걸었다.
운진은 마침 어떤 벽의 마지막 드라이월을 못으로 박고 있었다.
   "왜!" 그가 뒤를 보지도 않으며 고함을 질렀다.
숙희는 다가가서 이미 매달린 드라이월을 잡았다. "나한테 화났지."
   "비켜요! 다쳐요." 운진이 망치 쥔 손을 내렸다.
그 틈에 숙희는 그를 안았다.
운진이 비키려다가 혹은 그녀를 피하려다가 멈췄다.
그녀는 운진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운진씨가 화 내면 난 이 세상에 설 데가 없어."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나 전근도 안 가고, 거기 진짜 그만 두었어. 화 풀어." 
   "아까 회사 가시는 거 같더니." 운진은 약간 빈정거렸다.
   "전근 시비 안 걸고 복직되나 하고 갔더니..."
   "정말 그만 둔 거 아니면 말하지 마세요."
   "..."
   "전근 아니면 복직,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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