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운진이 부축하는 대로 따라 들어와서는 소파에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그리고 그녀는 일초도 안 되어 잠이 다시 들어버렸다.
운진은 숙희에게 안 쓰던 담요를 덮어주었다.
다음날.
운진은 아침 일찍 회사에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나간다고 전화하고 제 추렄을 몰고 나가서 도넛과 커피를 두 사람 몫으로 사왔다.
그는 어쩌면 배달일을 조만간 그만 둬야 하나 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동안 정말 초인간적으로 버텼어요." 숙희가 커피와 도넛을 하며 하는 말이다.
"왜요?"
"남의 집에서 자는데. 자는 새, 누가 저를 건드리면 어떡해요."
숙희가 고개를 저었다. "어저께 운진씨 안 오셨더라면 전... 아휴."
운진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쌩판 남의 집이 더 낫습니까? 제가 큰 거짓말장이가 되기로 하고. 숙희씨, 일단 집에 들어가세요."
"네?"
"우리 둘을 뭐라 하든말든, 일단 들어가세요. 보기가 안 좋네요."
운진은 숙희란 여자를 알고 나서 그녀가 그렇게 처절하게 우는 것을 못 봤다.아니.
사실 그녀는 어느 누구 보다도 오운진 그 앞에서 울어 본 적이 없다.
숙희는 걷잡을 수 없이 흑흑흑 흐느꼈다.
운진은 그렇다고 그걸 기화로 그녀를 껴 안고 이상한 위로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녀는 그나마 그를 믿고 있는데, 포수는 품 안에 날아 들어온 새는 되려 날려 보내는데...
그녀는 집에서 완전 약점 잡고 구석으로 모는 것이다.
일단 그녀를 출신도 모르는 것으로 몰고 갔다고.
그래 놓고는 기 막혀 하는 딸더러 한국에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나가라니.
게다가 결혼하라는 상대 남자는 고향에서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사십 넘은 노총각.
게다가 공희모와 먼 친척간이라니.
운진은 숙희의 흐느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숙희씨는 절 어디까지 믿으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를 남자로 본다면 어디까지. 또 저를 친구로 본다면 어디까지. 그렇게요."
"왜 그렇게 물어봐요?"
"저는 여기서 숙희씨와 살면서 얼마든지 편하게 해 드릴 자신 있어요."
"여기서요?"
"녜."
"여긴... 삼촌네 꽃집이라면서요."
"이젠 제꺼예요."
"저더러 여기서 살라구요."
"녜."
"아..."
숙희는 그냥 보이는 복도를 쳐다봤다. "방이... 하난가요?"
"방은 둘인데요. 화장실이 하나예요."
"아..."
숙희는 이제 거의 마른 눈물을 손등으로 찍어냈다.
그리고 그녀가 픽 웃다가 울상을 지으며 운진을 흘겨봤다. "아주 못 됐어. 날 아주 가지고 노나 봐. 날 울리구."
운진은 벌떡 일어났다. "우리 바람이나 쐬러 가요!"
"어디루요?" 숙희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강아지도 가질러 갈 겸. 진짜로 코에 바람 좀 넣자구요."
"강아지를 이리로 데려와요?"
"그럼, 그 집 사람들이 장사 나가면서 개를 돌볼 것 같아요?"
"여태는 어떻게 했지, 그럼?"
숙희의 얼굴에 혼동의 빛이 떠올랐다.
운진은 부엌으로 걸어가서 벽에 걸린 수화기를 내렸다. "가게 전화 번호요."
그래서 운진이 한씨의 가게로 전화해서 개에 대해 물어보니.
개새끼는 집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누구 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