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숙희의 차를 따라 가서 그녀가 집 안으로 틀림없이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다 확인하고 추렄을 돌렸다.
밤 열시가 넘어서였다.
그는 그 길로 병선이를 찾아갔다.
"당연히 삼춘이 화원을 비워야지, 성!" 병선 또한 당연히 화를 냈다.
영인이모가 날 밝으면 당장 뒤집어 엎는다고 두 팔을 걷어 부쳤다.
이튿날. 운진은 몇군데 스페셜로 야채와 그로서리 배달일을 마치고 화원으로 갔다.
화원에는 병선의 모, 즉 운진의 제일 큰이모가 미리 와 있었다.
그 이모가 평소 올케를 미워하던 차, 그리고 오빠가 큰 아들이라 해서 그나마 부모님 유산을 받아 먹었는데, 이번에 나갔다가 마저 뭘 팔고 돈으로 바꿔 논 것을 다들 눈치채고 있던 차, 조카에게 돈 받고 팔아 먹은 화원을 은근슬쩍 도로 차고 앉은 것은...
친척의 탈을 뒤집어 쓴 도둑 심뽀라고.
"여기 엉망인 거를 운진이랑 병선이랑 겨울 내내 때려부수고 싹 꾸며 놓으니까, 삼촌이랍시고 한 입에 털어 먹어?"
그 이모의 말인즉슨, 조카가 화초가게를 키워놓은 것 만큼 제 값을 쳐서 되사던가.
아니면, 팔았으니 싹 비우고 나가던가.
"내가 언니더러도 그 집에서 나오라고 했어. 얼렁뚱땅 그런 식으로 돈을 가부시끼 하려고."
그 이모가 친척 중에서 가장 말빨이 세고.
또 그 이모의 말이 거의 정당하다.
"운진아. 너, 매상 올려놓은 그대로 달라 해. 아니면, 이십사 시간 안에 나가라 해."
집은 집값과 삼촌네가 빌린 돈을 비교해서, 그 동안 이자 안 준 거 다 따지고 해서, 차액 주고 받고 명의 이전하고. 옛날부터 그 이모의 말이 그 집안의 법이다.
그 집안에서 유독 그 이모만 정규 대학을 나왔으며, 비단 그래서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집안의 크고 작은 경조사를 그 이모가 전대 차고 다 휘둘렀고, 누구든 그 이모의 말에 모두 따랐다.
삼촌이란 이는 입도 벙긋 못 했다.
같은 주말에 그 삼촌네는 근처 모텔에다 장기투숙으로 계약하고 화원을 비웠다.
그 새 그 안에서 쓰레기가 운진의 추렄으로 세 차나 나왔다.
그리고 운진은 숙희를 집으로 찾아갔는데.
그녀의 하늘색 혼다 차는 집 앞에 서 있고, 문 노크에 응답이 없다.
운진은 문을 두드리며 개가 짖나 귀를 기울였다.
집 안은 조용했다.
그래서 그는 혹시 숙희가 개를 걸리러 나갔나 해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기를 근 한시간.
운진은 추렄을 돌려서 화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주일을 배달일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고 다시 돌아온 토요일.
운진은 숙희를 집으로 또 찾아갔다.
응?
그녀의 하늘색 차는 전혀 움직인 흔적이 아니었다.
조금 삐딱하게 세워진 그대로였다. 가게?
이튿날 일요일.
운진의 부모가 교회에서 화원으로 왔는데 한씨네 닷지 밴이 따라왔다.
그리고 운진은 알게 되었다. 숙희가 둘이 헤어진 날 밤으로 집을 나갔다는 것을.
그러니까 일주일째 행방불명이라는 것이다.
운진은 한씨의 추궁적인 질문에 얼굴을 굳혔다.
"모릅니다!"
연 이어 공희모가 운진에게 삿대질을 했다. "너 그 기집애 어디로 빼돌렸어!"
"이런, 씨발! 당신 뭐야! 당신 뭔데 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이 씨발놈의 인간들이!"
운진의 입에서 그렇게 말이 나갔을 때, 제일 먼저 물러선 이들이 운진의 부모였다.
자식이지만 또라이가 되면 아래위도 없고 안면도 무시하는 아들인고로.
"당신들, 내가 짐 옮겨주었을 때 고맙단 말이나 했어? 그리고 한씨! 나한테 이렇게 못하지이!"
한씨는 어떤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공희모의 손가락이 올라가려다 말았다.
"끝까지 숙희 아버지 노릇 하고 돈 받고 싶으면, 나한테, 십할, 이러면 안 되지이!"
운진의 그 싸가지 없는 말에 한씨가 딴청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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