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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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10. 06:03

   운진은 병선이가 돌아가고 난 후에도 혼자 술을 한다. 
그는 새삼스럽게 선을 아예 뽑아 버린 전화기를 쳐다본다. 그녀가 전화를 걸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증명할 길은 없지만 어딜 가나 남자를 잘 만나서 또 어울리고 이용할 것이다. 그 상대는 동료 사원일 수도 있고 밖에서 만나는 타인일 수도 있다.

   그대를 보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그대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남겨질 나는 견딜 수 있습니다
   그대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대를 보낼 수 있는 마음은
   내가 그대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홀로 될 나는 참을 수 있습니다
   그대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러나 내가 떠난다면
   그래서 그대가 남겨진다면
   그대가 무너질 것을 바로 그 순간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죽기보다 싫지만 그대를 보내렵니다
   그대 열어놓고 간 문을 닫고
   이제 마음만 접으면 나 자신과의 갈등만 남는 거죠

   나는 잘 할 거예요
   그러니 그대도 잘 하겠죠
   혹시 나의 미련은 시험하지 말기 바래요 그런 것 
   안 남기려구요...

그는 꼭지가 완전히 돌아서 졸도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술을 왜 이렇게 마셔.
숙희의 음성이 들리고 그녀의 손길이 머리를 만진다. 나더러는 술 하지 말라 하고는.
운진은 그녀의 손길을 털었고 그녀의 음성이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다.
   체! 결국은 기운 차리고 나니까 딴 품을 찾아 날아가는 배신의 새.

   그가 술에서 깨어난 것은 만 하루 후 였다.
그 동안 병선이가 두번 왔다 갔고.
진희가 따로 영진의 소식을 전하러 왔다가 돌아가고.
그의 누이가 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와서 동생을 깨웠다.
   "너 이렇게 술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마시면서, 숙희를 왜 가게 했니."
   "가지 말란다고 안 갈 여자 아니었습니다."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붙잡아 놨어야지. 너만 남아서 이렇게 술을..."
   "끝끝내 가더라구요." 운진은 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끝끝내 가더란 말이지."
   "그만 뒀다 하더니. 회사에서 전화 오고. 가서 마무리진다 하더니. 전근가야 한다 하고."
   "전근 가도 니가 오라 하면 올 거 아냐?"
   "벌써 두 번 가서 데려온 전적이 있습니다."
   "그럼, 니가 아예 이사가던가."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너... 숙희를 사랑은 하는 거니?"
   "실상을 알고 나니까 만정 다 떨어졌습니다."
   "숙희의 실상? 오해하는 거 같은데?"
   "이번 술로 그 여자를 씻어 버렸습니다."
   "니가 씻어 버린 거, 숙희도 알어?"
   "간 여자, 이제 생각 안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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