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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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10. 06:02

   숙희는 이사 비용에서 남은 돈과 첫 주급을 합쳐서 가구를 들여 놓았다.
이 곳은 물건을 고른 당일 날 가게 추렄에 실어서 뒤따라 왔다.
히스패닠 계통의 일꾼들이 척척 들여놔 주고는 쓰레기까지 싹 치웠다.
숙희는 그들에게 이십불짜리를 주었다.
그 날 숙희는 용기를 내어 화원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벨톤만 한없이 울리고 앤서링도 터지지 않았다.
그녀는 술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절대 술 하지 마시요 하는 운진의 말이 귓전에서 맴도는 바람에 포기할 수 있었다.

   운진은 영진모에게 좋게 인사하고 그 앞을 물러 나왔다.
우리 집 양반이 쓰러진 것도 다 자네 덕분이네.
영진이를 돌아오게 누가 부탁이라도 했나.
   '흐! 나는 보고 싶어서 돈을 들여서 들어오게 했더니 그게 화근이라...'
운진은 웃음이 나왔다. '세상 참 좆같다!'
그는 화원도 싫고 과수원도 싫어서 집으로 갔다.
   "누나가 너 들어오면 교회로 오랜다." 모친의 전갈이었다.
교회는 그 동안 꾸준히 늘어난 교인들을 위해 또 하나의 성탄절 찬양 준비를 한다고.
정통 지휘자가 없는 관계로 이번에는 간단한 크리스마스 캐롤 송 메들리로 한다고.

   사일런트 나이트 호~올리 [나이트]
   올 이즈 캄 올 이즈 [브라이트]

그 노래의 베이스는 거의 일정한 음으로 일관한다. 가끔 음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소프라노의 최영란이 빠지니 네 명이라도 음량이 몹시 약하다.
테너는 병선이가 계속 맡는데, 의외로 쉬운 부분을 틀린다.
메조 소프라노는 역시 오운서가 잡고 있다.
   "지난 해의 것 또 하면 안 됩니까, 대장님?"
   당회장이 성가대 연습실에 들어와서 한 말이다. "한번 해 본 거니까, 조금만 연습하면..."
   "그런데, 소프라노가 없어서." 
누구의 그 말에 최 장로가 쥐구멍을 찾는다.
운진은 그제서야 그녀가 전혀 안 나오는구나 하고 알았다. 나야 일년에 한두번 얼굴 내미는 사이비 그리스도인이라 치고, 웬만한 성가를 잘 안다는 그 여자는 왜...
그러고 보니 마이 네임 이즈 영아라고 대답하던 그 집의 둘째딸도 안 보인다.
최 장로는 운진을 마주치면 말도 걸고 하는데.
장로 사모님은 운진을 마치 철천지 원수 보듯이 한다.
그래서 운진은 생각한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길래 내가 관심있어 하는 여자마다 모친들이 반대하나...
   그러고 보면 정화네만 좋다 한다.
   그 집은 둘이 좋다 하면 당장이라도 식을 올리자고.
그런데 그 쪽도 자꾸 질질 끌면 변할 것이다.
   "뭐가 나의 문제 같냐?"
운진은 과수원 대기실 페인트 일을 하면서 병선에게 물었다. "모친네들이 하나 같이 날 반대하고 철천지 웬수 같이 대하네?"
병선이 우물쭈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성은 속은 안 그런데 겉으로 보면 굉장히 거칠어 보여."
   "내가 거칠어 보여?"
   "말하자면 좀 질 안 좋은... 양아치?"
   "그래?..." 
   운진은 페인트 통에다 눈길을 깔았다. "나한테서 그런 색깔이 보인단 말이지."
   "사실... 성이 외모도 그렇고, 착한 성격의 사람은 아니지... 엄밀히 말하자면."
   병선이 사촌형의 눈치를 보다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여자랑 동거도 한..."
운진은 거기서 붓을 떨어뜨렸다. "뭐?"
   "맞잖어. 전근 가는 바람에 헤어진 그 여자분과 얼마나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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