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화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운전만 한다.
숙희는 앞에 보이는 길이 조금 복잡한 것 같으면 잠자코 있다가 뻥 뚫리거나 괜찮은 것 같으면 말을 계속 하면서 그의 화를 풀려 한다.
남 캐롤라이나 주를 떠난 때가 아침 아홉시 경이었고, 오후 한 시경되어 북 캐롤라인 주를 거의 중간 정도 관통할 때쯤 되어 운진이 추렄을 레스트 에어리아로 뺐다.
거기서 그는 그녀에게 암말도 않고 내려서는 휴게소 건물에 붙은 공중전화로 갔다.
차에 남은 숙희는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와아...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저 남자한테 내가 무슨 큰 약점이 잡혔길래 나 자신 모르게 쩔쩔매.
숙희는 운진이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보고는 그래도 일초도 안 지체하고 추렄에서 내렸다.
그녀는 늦게 가면 그가 소리라도 지를까봐처럼 부지런히 다가갔다. "왜?"
"마침 사촌여동생이 놀러와서 누님이 붙잡고 일 시킨대요."
"오오..."
"어디 가서 밥이나 먹읍시다."
"밥? 난 왜 밥 단어만 들으면 놀래지?"
"흐흐. 시장하실 거 아녜요."
"뭐... 운진씨 좋은대로."
두 사람은 그 레스트 에어리아에서는 화장실만 쓰고 이내 출발했다.
운진이 추렄을 다시 세운 곳은 북 캐롤라이나 주의 페잇츠빌(Fayettsville)이라는 도시이다.
그 곳은 군 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이다.
그 군 부대는 미국이 전쟁이나 진압으로 군대를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뜨는 특수 부대이다.
그리고 그 군 부대 주위에는 한인들이 제법 많이 모여 살면서 자그마한 샤핑 센터 하나를 온통 우리 글 간판으로 점령했다.
운진과 숙희는 영어 해석으로 '고향'이라고 씌여진 음식점으로 들어섰다.
그 안은 마치 우리나라의 선술집처럼 동그란 드럼통으로 테이블을 만들었고, 그 가운데에는 한국식의 구공탄 대신 개스버너가 놓였다.
웨이추레스로는 첫인상과 분위기가 좀 '그런 출신'이다 느껴지는 여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화장도 진하게 했으며 숙희를 마치 못마땅한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숙희는 속으로 하필이면 이런 데를 하고 눈을 내리 깔았다.
"뭐 드실래요?" 여인네는 말투도 거칠게 나왔다.
운진은 사방 벽을 휘휘 둘러보더니 그 여자를 보고 웃었다.
"진짜 고향집에 온 느낌인데요?"
운진이 메뉴를 집어서 그 여인에게 넘겼다. "저는 감자탕을 하구요. 여기 이 사람은 불갈비 정식에 냉면을 주실래요?"
여인이 주문양에 조금 질렸나 자세가 달라졌다.
"아!"
운진이 손을 처들었다. "냉면, 면을 좀 푹 익혀주실래요?"
그의 그 말에 숙희는 그를 쳐다봤다.
"냉면은 푹 익히면 맛 없는데." 웨이추레스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보통 보다 약간만 더 익혀주세요."
웨이추레스 여인이 숙희를 슬쩍 훑어보고 갔다.
숙희는 그제서야 몸을 바로 폈다.
그녀는 거칠게 보이는 사람만 보면 상대가 여자이든 남자이든 주눅이 든다.
그녀는 누가 언성만 높혀도 속으로 자지러진다.
누가 그녀의 그런 특징을 보면 덩치값도 못한다고 놀리겠지만 그녀는 그렇다.
그녀가 보는 견지에서 운진이란 남자는 어쩌다 말을 툭 쏘는 스타일이지만,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위의 두 가지를 전혀 하지않는다.
음식이 나왔는데.
맛은 어떨지 몰라도 밖에서 본 선입관이나 안에서 본 또 하나의 선입관과 달리 음식은 정갈했다.
숙희는 밑반찬을 지벙거리며 맛있다고 고개를 연신 끄떡였다.
"반찬이 서울식인데?"
운진의 말에 숙희는 반찬들을 새삼스레 내려다봤다. "서울식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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