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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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6. 27. 01:49

   숙희는 저녁 리셒숀이라는 자리에서 나온 와인도 사양했다.
운진이 딱 한 마디 한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술은 하지 말라고.
그녀는 사실 긴장도 풀 겸 딱 한 잔 정도는 하려 했는데, 그가 한 말이 몹시 걸렸다.
호텔로 태워다 주는 그 회사 공용차량에 그녀와 그녀의 보쓰가 같이 탔다.
방은 층도 다르게 따로 예약되어 있었다.
숙희는 일단 불안과 의심을 떨궜다.
같은 차가 다음날 아침 정각 여덟시에 호텔 앞에 와 있겠다고.

   숙희는 지정된 방에 들자마자 운진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나 밤 새게 생겼네?"
   "왜요?"
   "보쓰가 여기 와 있었으면서 아무 것도 안 해 놓은 거야."
   "아..."
   "그러니 내가 여기 애들 꺼 안 챙겨왔으면 어쩔 뻔 했어?"
   "숙희씨를... 수키를 믿은 모양이죠."
   "흥! 그러니까... 여기 와서 지 비서처럼 자료를 준비하라 이건가?"
   "하하."
   "나를 마치 회사에서 하나 밖에 없는 애날리스트처럼 소개하더라니까?"
   "좋은 거요."
   "아휴."
   "그 융자 회사라는 데가... 뭐가 문제라서 그 많은 비용을 부담해 가며 초빙한답니까?"
   "겉으로는... 거대하게 보이지만,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는 불량 융자들 때문에 그걸 메이껖 하려고 선의의 고객에게 그 손해나는 만큼 나눠서 물게 하는데..." 
   "그래도 되나아..."
   "보험도 마찬가지지. 어디 큰 피해가 발생해서 물어주다보니, 보험 회사가 캐피탈이 줄어들거든. 그러면 다른 가입자들에게 골고루 나눠서 프리미엄을 올리지."
   "그게, 법으로 허용된 거요?"
   "지네 팔리씨(policy)가 그렇다 하면 그만이잖아."
   "어이 도둑놈들."
   "흐흐. 돈 장사 하는 애들이 도둑놈인 거, 인제 알았어?"
   숙희는 운진과 통화하면서 서류들을 분리하느라 손이 바쁘다. "이 회사가 첫 사분기에 적자로 나타나면, 곤란하지요... 그런데 어쩔 수가 없네요."
   "걔네들도 동의하오?"
   "아마... 우리 보쓰의 아이디어대로 초읽기 식의 감원이나 감봉 따위로 막으려 할지..."
   "그런 것도 초읽기를 합니까?"
   "현재 다른 은행들을 먹으려 하는 찰라에 정작 적자로 밝혀지면... 말이 안 되잖아."
   "거... 별로 좋지않은 일을 맡은 것 같시다."
   "나는 자료나 챙겨주고, 손은 보쓰가 대겠지, 뭐. 이런 데서만 벌써 얼마짼데."
숙희는 문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를 뒤늦게 알았다.
   "보쓰가 내 방으로 찾아온 모양인데? 끊지 말고 있어?"
숙희는 수화기를 하늘로 보게 내려놓았다.
그녀가 문을 좀 조심히 여니, 그녀의 보쓰가 손을 내밀었다.
   "I will work on it tonight so you can have some rest. (내가 오늘 밤 작업해 보겠으니 당신은 휴식을 좀 취하도록.)"
   "I have no trouble. (문제 없는데요.)"
   "We're gonna have long day tomorrow. We have to fix their problem. (내일 하루 종일 걸릴 거요. 우리가 그들의 문젯점을 고쳐줘야 하오.)"
   "오케이."
   숙희는 좀 전까지 서류들을 이리저리 챙기던 티테이블로 돌아와서 수화기를 봤다. "아직 거기 있어, 운진씨?"
   "녜. 자기가 한다고 달래는 모양이요?"
   "준다, 그럼?"
   "달래는데 줘 버리세요."
   "알았어!"
   "하나도 남김 없이 몽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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