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험한...
운진과 영진과 그녀의 오빠 수영의 합창은 거기서 끊겼다.
그 집 가장이신 어르신네가 들어선 것이다.
운진은 기타를 수영에게 얼른 주고 벌떡 일어섰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구십도로 인사했다.
영진이 그 어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아빠!"
"니가 말한 그 청년이냐?" 이 집 주인장도 저음의 소유자이다.
수영이 중간 쯤에서 운진더러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운진은 두어 발짝 더 가서 그 집 식구들 앞에 섰다.
"아부지. 이 친구, 기타 솜씨가 보통 아닌데요?" 수영이 기타로 운진을 가리켰다.
그 집 어른이 큰 기침을 하며 돌아섰다.
"아이, 아빠!"
영진이 부친의 팔을 잡았다. "못 치는 노래가 없어."
그런데 이 집 가장은 아들을 아래위로 훑어 보고는 큰 기침을 하며 돌아섰다.
이 집 안주인이 아들더러 저리 가라는 손짓을 했다.
아들을... 똥처럼 취급하네.
운진은 수영을 천천히 살펴봤다. 이 집 식구들이 인물은 한가닥씩 하네, 다들...
수영이 기타를 소파에다 가지런히 세웠다.
이 집 가장이 대충 손만 씻고 나오자 다이닝룸의 식탁으로 모두 모였다.
가장 어른이 한쪽 끝을 차지하고.
이 집 아들이 부친의 오른쪽에 앉고, 운진은 수영과 나란히 앉았다.
영진이 운진을 마주 보고 앉았다.
영진이 벌써 반찬 그릇을 운진의 앞으로 밀어보내는 시늉을 하다가 제 아빠의 눈치를 봤다.
"너 오늘은 아빠 옆에 안 앉어?" 저음의 집 어른이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있잖아, 아빠. 내가 시중들어야지."
다섯명 먹기에는 너무 푸짐한 상이 치려졌다.
"미스타 오라고 했나."
이 집 안주인이 운진 앞에다 국그릇을 놓아주었다. "사양 말고 어서 들어요."
운진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조금 들었다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이 집 가장이 부엌을 쳐다봤다. "오늘은 반주 안 주나?"
"어이그으! 그 놈의 반주는!"
가장 어른이 딸에게 손짓했다. "진이, 니가 가져와라."
영진이 발딱 일어서서 뒷켠의 자개가 번쩍번쩍하는 벽장으로 갔다.
저걸 한국에서 가져온 모양이네...
운진은 그 자개장을 자세히 봤다. 진짜자개로 만든 건데?
영진이 그 안에서 아마도 크라운 로얄 병 같이 생긴 것을 꺼내왔다.
그녀가 그것을 부친 앞에다 놓았다.
"오늘은 안 딸아주니?" 가장 어른이 딸에게 한 말이다.
"싫어! 인제 앞으로 안 할 거야."
"여태 니가 딸아주는 맛에 마셨는데에."
"안 해! 아빠가 딸아서 마셔어!" 영진의 얼굴에 화가 피어올랐다.
안주인이 어른네에게 눈짓을 했다.
운진은 구경하다가 얼른 일어섰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이 집 식구들이 한데 얼었다.
방문객의 술을 받으며 이 집 가장이 헛기침을 연발했다.
가장이 아까워 하면서 아들과 손님에게도 한잔씩 권했다.
운진은 달아빠진 술이 술이냐고 입술만 축였다.
수영은 홀짝홀짝거리면서 달아빠진 술을 즐긴다.
영진은 운진이 술을 마시나 안 마시나 열심히 지켜봤다.
이 집 가장의 얼굴이 금새 거나해져 갔다.
간! 이 집 아저씨 간이 안 좋구나... 운진은 붉다 못해 검어진 어르신의 얼굴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