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거리
숙희는 그런대로 계모와 잘 지낸다.
첫째는 그녀의 부친 말에 의하면 숙희가 가게에 나오고부터 이상하게 남자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것이다. 아마도 숙희의 동양 여인치고 훤칠한 키에 이목이 뚜렷한 용모, 그리고 까만 머리에 대조되는 흰 피부 때문이리라.
그리고 공희가 다시 만난 언니를 잘 따른다.
공희는 키가 숙희의 어깨에 온다. 그리고 공희는 차 사고로 다쳐서 한쪽 다리를 약간 전다.
공희는 언니가 집에서 티 셔츠에 반바지만 입고 그 늘씬한 몸매를 보이면 가서 안아본다.
어느 일요일, 숙희는 혼자 집을 보고 있다.
가족들은 모두 교회에 갔다.
그녀는 같이 가자 할 때마다 종교에 취미없다고 사양한다.
그녀는 워싱톤 포스트 신문을 이 날도 뒤적인다. 구인난을 보는 것이다.
그녀의 눈에 뭐가 하나 띄었다.
레전씨 뱅크?
숙희는 그 은행이 워싱톤 디 씨에 위치했고, 파이넨셜 상담자와 텔러 초급을 채용한다는 광고를 발견한 것이다. 레전씨 뱅크면, 나 처음 이민올 때 수표 바꿔준 은행인데?
그러니까 4년 전, 그녀가 한국에서 학교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이민올 때 외환은행에서 끊어준 수표를 들고 고모부가 근 반나절을 운전해서 어디를 찾아갔다. 건물이 아주 오래되고 안도 으리으리했는데, 그 때 처음 본 미국의 은행이란 인식이 숙희의 뇌리에 깊히 박힌 인상이다.
그 은행이 기억에서 안 지워졌는데, 레전씨 뱅크이다.
숙희는 신문의 그 광고를 오렸다.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문 닫았을테고, 내일 전화 해 봐야겠다!
그녀는 그 외의 구인 광고는 슥 훑어보기만 하고 치웠다.
여기서 디 씨까지 얼마나 걸리나 한번 운전해서 나가볼까?
그래서 그녀는 바지만 긴 것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신문에서 오린 은행의 광고 내용을 한번 더 자세히 봤다.
뉴 욬 애브뉴 선상이라고?
그녀는 하늘색 혼다 승용차의 시동을 걸자마자 에어콘부터 틀었다.
그녀는 워싱톤 디 씨의 뉴 욬 애브뉴란것만 갖고 찾아가 보려는 것이다. 펜실배니아 주의 앨런타운 시에서 살다 온 그녀에게는 솔직히 무리이겠지만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나선 것인데.
그녀는 길을 잃고 헤매다가 버지니아 주까지 들어갔다가 나오고, 포토맼 강 다리를 건너서는 차량 속에 휩쓸려서 캐피탈 벨트웨이도 타야 했다.
그녀는 은행을 찾긴 찾았다.
그녀가 집에 돌아온 때는 가족이 교회에서 이미 귀가해 있었다.
"언니! 어딜 갔더랬는데?"
공희가 그렇게 제일 많이 반겼다.
숙희는 계모에게 인사하고 씻으러 갔다.
그리고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갔었다고 말했다.
"아빠 보석가게는 어쩌고!"
계모가 성을 냈다. "이제 겨우 손님이 좀 는다는데."
숙희는 암말 않는 부친이 밉다.
그래서 그녀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취직되어서 이 집을 뜨리라고.
그녀가 부친의 가게를 그만 두려는 또 다른 이유는 아빠의 바람끼를 묵과할 수 없음에서이다.
한씨는 딸에게 가게를 맡기고, 옆에 붙은 세탁소에 가서 하루 종일 산다. 그 세탁소에서 바느질하는 생과부에게 수작을 부리는데, 한씨 혼자 생각에만 거의 이루어져 가는 눈치이다.
그래서 한씨는 딸이 그만 두겠다는데 말을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가 딸 입에서 안 좋은 말이 나오거나 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이 그만 둬버리면 그 때는 세탁소에 놀러가서 하루 종일 놀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왜.
작은딸은 아빠가 나가려고 하기만 하면 어디 가느냐고 묻고 따지기 때문이다.
숙희는 일단 신문에서 본 것이라 더 알아보겠다고 그런 합의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