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채프먼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바로 응답하지 않았다.
벨톤이 약 열번 정도 울리다가 자동으로 교환에게 넘어갔다.
숙희는 교환더러 그의 전화에 메세지를 남기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Hi! I'm not feeling good today. So, I'm going to take the rest of day off. (하이! 오늘 몸이 안 좋네요. 그래서, 오늘은 그만 조퇴를 할 겁니다.)"
숙희는 메세지를 남기자마자 사무실을 달아나듯 나섰다.
그녀가 라비로 해서 바깥 주차장으로 나가기까지 그녀를 불러세우는 일은 벌어지지않았다.
밖에 비는 그 새 그쳐 있었다.
숙희는 화원에 도착해서 그 동네는 아직도 가랑비가 내리고 있음을 맞이했다.
화원 앞에는 그녀의 눈에 너무도 익은 짙은 색의 추렄과 아마도 운서언니의 차일 것 같은 낡은 회색의 대형 승용차만 세워져 있고. 손님은 하나도 없는 듯했다.
숙희는 하늘색 혼다 투 도어 승용차를 주차장의 한쪽에 한결치게 세우고 내렸다.
그녀는 아주 가늘게 내리는 비를 무시하듯 맞으며 화원 건물의 뒷문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녀는 부엌에서 뭘 만들고 있는 운서를 발견했다.
"언니!"
숙희는 반가움에 달려가서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오늘 비가 와서 한가한가 봐요?"
"운진이 싫어하는 거는 되도록이면 하지 말지?"
운서가 느닷없이 던지는 말이다. "둘이 나중에 같이 살 거면 말야."
"네?"
숙희는 포옹을 얼른 풀었다.
그녀는 그리고 말을 얼른 낮게 낮추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어떤 미국 남자가 화원 전화로 숙희를 찾았대."
"네? 어떤... 미국 남자가요?"
"옛친구라던데?"
"네?"
운서가 스토브의 불을 조절하는 것 같더니 돌아섰다. "같이 안 살 거면 몰라도."
운서는 매장으로 통하는 문으로 나갔다.
숙희는 그 자리에 서서 옛친구 미국 남자라니 하고 혼동에 빠졌다.
화원 전화번호를 아는 미국 남자... 누구지?
혹시...
혹시 집에서 앙심먹고 아무나한테 여기 전화 번호를 줬나?
그렇더라도 날 찾는 미국 남자, 옛친구?
숙희는 대나를 떠올렸다. 대나에게서 전화 번호를 받을, 그리고 날 옛친구라고 우길 남자.
숙희는 찌게가 끓어 넘치려는 것 같아 불을 얼른 줄였다.
문을 통해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숙희는 혹 도와줄 일이 있을까 나가 보고 싶지만 스토브에 올려진 냄비 때문에 참기로 했다.
사람들의 소란스런 소리는 점점 더 커져가는 듯 했다.
숙희는 스토브의 불들을 모두 껐다.
그리고 그녀는 매장으로 나갔다.
흔히 없는 일인데, 저녁에 갑자기 화원 찾는 손님들 때문에 세 사람은 정신없이 바빴다.
"오늘 비도 오고 그래서 일 하는 사람들을 일찍 보냈더니."
운서가 조금 풀어진 듯 했다. "마침 숙희는 센스가 있어서 잘 도와주네."
숙희는 운서언니에게 조그맣게 아이 뭘요 하면서 운진의 눈치를 살폈다.
"어머! 어머! 내 정신 좀 봐!" 운서가 안채로 달려 들어갔다.
숙희가 불은 내가 껐어요 하고 말할 챈스도 없었다.
운진은 여기저기 만져진 진열대를 정돈하고 있을 뿐이다.
숙희는 말할 기회를 찾느라 그냥 서성거렸다.
운진이 바깥으로 눈길을 돌렸다. "비 또 오네..."
비는 잠깐 그쳤다가 또 오고 있었다.
숙희는 제 머리를 쥐어짜며 전화 걸어 온 미국 남자가 누굴까 연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