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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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13. 10:09

   공희모가 부엌에서 난리를 피우며 저녁 준비를 한다.
   무슨 놈의 기집애가 쌀 앉힐 줄도 몰라?
   지가 무슨 대감집 딸년이라고 해서 바치는 밥만 처먹어!
   호적에 오르지도 못한 거를 불쌍해서 입적시켜주고, 미국에도 따라오게 해 주었으면, 고맙다는 뜻으로라도 만일 집에 와서 아무도 없으면 밥 정도는 해놔야 그나마 사람 구실한단 말을 듣지.
   내가 니 종이야, 이년아!
와당탕!
부엌에서 다이닝룸으로 스텐레스 스틸 냄비들이 굴러나왔다.
그 중 하나가 숙희의 발 앞에까지 튕겨져 왔다.
어째 아비란 이가 내다보지도 않고 역성은 거녕 말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공희만 소파에 앉아서 언니를 봤다 부엌을 봤다 할 뿐이다.
숙희는 아까부터 서 있는 자리에서 문을 향해 돌아섰다.
   언니...
공희가 눈치채고 조그맣게 불렀다. 언니이...
숙희는 몰래 나가느라 애쓸 필요없다 생각했다.
그녀는 신을 신고 입술을 꼭 깨물어서 설움처럼 터지려는 비명을 있는 힘을 다해 참았다. 그녀는 채 들여가지도 못한 백을 집어들고 문을 확 잡아 당겼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곳은 희한하게도 가게 앞의 텅빈 주차장이다.
저 멀리 보안등 아래 마치 오래 전부터 세워져 있는 듯한 세단 한 대만 보일 뿐, 낮에 그렇게 복작대던 주차장은 온통 쓰레기만 뒹군다.
그녀는 자신도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모에게 있는 욕 없는 욕 다 얻어먹고 울음이 터지려고 해서 뛰쳐 나와봤자 아는 데라곤 아빠를 도와서 조금 일했던 가게.
그녀는 핸들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그 위에다 이마를 대고...
그리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얼마를 울었나.
그녀가 이제는 그리워서 부르기만 하는 엄마에게 도로 나가자고, 그리고 어쨌든 일단 이 곳을 떠나자고 차의 시동을 걸려 하는데.
어디서 아주 시끄러운, 그러나 웬지 귀에 익은 어떤 소리가 가까워져 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터져버린 자동차의 머플러 소리 같았다.
숙희는 네 개의 문들이 다 잠겼나 둘러보는 것부터 했다.
시커먼 차 한대가 주차장에 금 근 것을 무시하고 가로질러서는 보안등 아래 외로히 남겨져 있던 그 승용차를 향해 직진하는 것이다.   
그것은 짙은 색의 추렄이었다.
그 추렄이 그 승용차 앞에서 대각선으로 섰다.
추렄의 옆좌석 문이 열리고, 여자로 보이는 두 모습이 연달아 내렸다.
당연히 말소리들은 숙희에게까지 들려오지않았다.
두 까만 머리의 여자 중 하나의 얼굴이 숙희 방향을 흘끔흘끔 보는 것 같았다.
원래 흰 옷인데 보안등 불빛 때문에 바랜 색으로 보이는지 혹은 원래 계란색 계통인지의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그 승용차의 운전석 쪽으로 가서는 얼굴이 이쪽을 향했다.
얼굴들이 다 이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거리상 그리고 어둠 때문에 얼굴이 식별되지는 않았다. 
   치! 언내들이구만!
숙희는 울고 난 후의 긴 한숨과 함께 콧물을 튀겼다. 집에들은 언제 들어가는 거야.
숙희는 여기도 시간 보내기에 방해되는 것들이 있구나 하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두 여자가 금방 사라졌다.
   잠시 후 그 승용차도 부릉 하고 시동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차의 헤드라이트가 켜지더니 하필 숙희 방향을 비추는 것이었다.
숙희는 헤드라이트 켜려던 손가락을 얼른 거두고 손으로 눈 앞을 가렸다.
그런데 그 차들이 떠날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차의 시동을 걸었으면 떠날 것이지 아직도 할 얘기들이 남았는지 아마도 유리를 내린 상태로 수다를 계속하는 모먕이었다.
숙희는 앞유리 가리개를 아주 조심해서 내렸다.
   철딱서니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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