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키는 삶에 번민이 올수록 은행 일에 몰두했다.
다들 퇴근한 뒤에도 일부러 남아서 맞춰본 돈을 또 맞춰보고 설합이나 손금고도 잘 잠겼나 몇번씩 당겨보곤 했다.
그녀가 더 이상 뭉갤 이유가 없어져서 대리석 바닥을 또각또각 걸으면 라비 한 구석에 자리잡은 경비석에서 배불뚝이 아저씨가 모자 챙을 만진다.
그녀가 늘 은행 주차장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직원이다.
그녀가 주차장을 떠나면 은행 정문의 철 셔텨가 내려진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근무 모습이 경비 아저씨에 의해 상부에 보고되고 있었다.
숙희는 퇴근길에 벨트웨이가 밀리면 차라리 더 좋다. 늦어지는 만큼 집에 더 늦게 들어가기 때문에.
그 만큼 공희모와 대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때문이다.
그래 봤자 다섯시를 넘긴 적이 없다.
그녀는 집에 도착한 때부터 부친과 공희가 가게를 닫고 귀가하는 일곱시 경까지는 초읽기 하는 심정으로 방에서 초조하다. 언제 공희모가 트집잡고 나올지. 또는 무슨 힘든 심부름을 시킬지.
어느 날 숙희는 길이 너무 밀리는 기회로 아무 데로나 빠져서 가게로 갔다.
그 때가 여섯시 경이었다. 그리고 그 날이 수요일이었던가.
숙희가 가게에 들어서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숙희는 무조건 인사했다.
그들이 숙희를 돌아다 보는데 모두 한국인들이다.
숙희는 눈이 마주치는 이한테마다 목례를 보내며 아빠나 공희를 찾았다.
뭔 일이 났나...
숙희는 아빠가 뒤에 계시나 하고 진열장 사이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 뒤에서 바삐 나오는 공희와 마주 쳤다. "공희야. 아버지는?"
공희가 땀에 뻘뻘 젖어있다. "아빠, 뒤에!"
"공희야. 이 분들은..."
"아빠 동업자래."
동업자...
숙희는 뒷방으로 통하는 복도를 들여다 봤다.
그 안에서 어떤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빠네...
이어 한씨가 어떤 오십대의 남자와 나란히 나왔다.
"오! 숙희 왔니?"
한씨가 옆사람에게 딸을 가리켰다. "얘가 우리 큰애. 은행에 근무하지."
"오오!"
그 남자의 숙희를 보는 눈이 번들거렸다. "소문대로 아주 미인이시구만. 우리 며느리 삼아도 되겠다. 나한테 아들이 있으면 말야."
"지금이라도 하나 낳아. 우리 큰애 누가 채가기 전에."
"그럼, 그 아들놈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동안 한형 딸이 안 늙고 있을래나?"
"부지런히 키워."
"아니면, 내가 먼저 데이트 해 봐?"
"허허허. 글쎄?" 한씨가 큰 딸의 눈치를 슬쩍 본다.
숙희는 슬그머니 돌아섰다. 괜히 왔네...
"와아! 누굴 닮은 거야? 딸래미 완전 글래머에다 늘씬하고 빵빵한대?" 남자의 그 말이 숙희의 엉덩이로 다리로 그리고 돌아선 가슴으로 날아와 달라 붙는다.
숙희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쪽 끼쳤다. 나는 절대!
"쟤 엄마가..."
"한형 눈에 불 키고 잘 감시해야겠는 걸? 딸 노리는 놈들이 많겠어."
"허허허. 글쎄?"
숙희는 뒤 안 돌아보고 문으로 향했다.
"언니, 가?" 공희가 불렀다.
숙희는 대답 대신 문을 확 밀었다.
방댕이가 탱탱하니 잘 튕기게 생겼다! 그녀의 등 뒤로 날아온 말이었다.
순간 숙희는 반발이 생겼다.
어떻게 아버지란 이는 누가 딸에게 그런 농을 하는데 가만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