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주차장에 나와서야 참았던 숨을 푸하 하고 내뱉았다.
남자들이란 젊은 거나 늙은 거나 하나 같이 여자를 장난감처럼 취급하고!
숙희는 부친이 점점 증오스러워져 간다. 암만 나이 들어간다고, 딸을 놓고 같이 농을 해?
숙희는 차를 찾아 가다가 파란 연기를 꼬리에서 내뿜으며 떠나갔던 짙은 색의 그 추렄이 세워져 있는 것을 봤다. 그 추렄은 아마도 양품점에 온 것이리라.
그 추렄은 양 유리가 내려져 있고, 뒤 짐칸에는 온갖 종이 밬스 같은 것들이 가득 실렸다.
그 때 양품점 유리문이 열리며 일단의 남녀가 나왔다.
그 때쯤 해서 숙희는 하늘색 혼다 승용차에 올랐다.
아주 우연이었다.
남자가 그냥 이리저리 보다가 숙희 쪽을 스쳐 보고 지나가다가 일순간 멈췄다.
숙희는 애써 외면하며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녀의 외면하는 곁눈에 그 남자가 계속 쳐다보는 것이 들어왔다.
그의 양 옆에 두 여자가 섰는데, 하나는 진희 같다.
그렇다면 반대편에 선 여자가... 짝꿍이야?
저렇게 저렇게 삼각 관계인가?
숙희는 저도 모를 코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녀에게 뜻도 모를 어떤 분노심이 일어난다.
공희 친구 말이, 바람둥이야? 저 자도 여자들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취급하는 거야? 그리고 여자애들은 서로 친구라면서 한 남자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숙희는 그 다음 추측을 애써 물리치려는 생각에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자존심도 없고 불결한 것들 같으니라구!
숙희는 캐피탈 벨트웨이로 다시 나갔다.
도로는 그 새 차량의 물결이 많이 줄어들었다.
숙희는 일부러 달릴 이유도 없고 해서 속도 제한에 맞춰 갔다.
그녀가 집에 도착하니, 정작 부친의 밴 추렄이 와 있었다.
허, 어디를 다니다가 늦었냐 하면 뭐라고 하지?
그런데, 벌써 와 있을 정도면, 나 나오고 바로 닫았다는 거네?
숙희는 일단 차의 발동을 껐다.
휴우!... 미국을 잘못 온 건가. 지금 이 싯점에서는 한국으로 도로 나갈 수도 없고.
엄마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가 시민권을 따서 재 친자확인으로 호적을 도로 옮긴 다음 미국으로 초청하기를 원하고 기다릴텐데.
정작 엄마 딸은 반 피붙이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하네요...
그런데 그녀가 집 안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영 이상한 것이다.
우선 음식 냄새가 하나도 나질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안 보였다.
숙희는 문간에서 집 앞을 돌아다 봤다.
그러고 보니 공희의 쉐볼레 세단이 안 보였다.
밴 차를 세워놓고 그 차 타고 나갔나?
숙희는 일단 집 안에 들어서서 문을 닫았다. 저녁은... 나는 할 줄도 모르는데.
숙희는 행여나 혹시나 하고 부엌 앞으로 지나가며 안을 들여다 봤다. 혹시나 저녁이 차려져 있나 해서.
그러나 행여나 하는 저녁 같은 것은 역시나 어디에고 보이지않았다.
부엌은 마치 며칠 간 밥도 안 해먹은 집처럼 말끔했다;
숙희는 씻기부터 하자고 제 방으로 향했다.
그 때 현관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허걱!
숙희는 기절할 듯이 놀래며 벽에 붙어 섰다.
그녀는 아마도 이 때부터 숨을 끊을 듯이 놀라는 병이 본격적으로 생겼는지 모른다.
"너 인제 온 거야?" 한씨의 고함이 들렸다.
"언니!"
"이 년 어딨는데!" 계모가 서슴없이 욕을 던졌다.
숙희는 내가 또 뭘 잘못했나 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이 집 식구들이 일제히 숙희를 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