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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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6. 29. 10:43

   숙희는 약간 서늘한 공기가 볼을 스치는 느낌에 눈을 떴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는 천장 팬이다.
    방안?
   그녀는 머리를 움직여서 옆이나 어디를 보려고 했다. 
그녀는 머리맡 쪽에서 소근소근거리는 영어 대화를 들었다. 운진씨?
   "Oh! I think she's up. (아! 그녀가 께어난 것 같소.)" 운진의 음성이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뒷통수부터 만졌다. 아, 어퍼...
   "아, 아파요?"
   운진이 숙희의 앞으로 와서 섰다. "아파요?"
숙희는 상을 쓰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는 정복 경찰 두 명이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된 거?..."
   "우선은 숙희씨 아버님이랑 사촌 되는 사람과 사촌의 친구란 남자에게... 숙희씨가 차지(charge)를 원하는지... 경찰이 물어볼 거에요."
   '왜!' 숙희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었다.
운진이 슬쩍 외면하는 척 하다가 숙희를 다시 봤다. "제가 싸웠는데요... 숙희씨 사촌은, 개한테 많이 물려서 병원에 실려갔고... 아마도 사촌을 따라온 남자는 무기 소지로..."
   "울 아빠는?"
   "일단... 그 타이어 아이언을 누가 가졌었나를 경찰이 물어볼 텐데... 하여튼 잠깐 일어나셔서 경찰하고 얘기 좀 해요."
운진이 숙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숙희는 운진의 손을 꼭 잡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녀가 꼭 잡았지만, 그리고 그도 그녀의 손을 꼭 잡았는데, 그 감촉이 무척 익숙하다.
아무래도 같은 손이 그녀의 엉덩이를 만진 것 같다.
   숙희는 경찰의 조사 설명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빠가 상훈이와 상훈의 친구를 동원해서 우리를 어떻게 해 보려고 했다니.
   기가 막혀서...
   그녀는 운진의 손길도 뿌리쳤다.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얌전할 줄로만 알았던 운진이란 남자가 어떻게 그녀를 어깨에 들쳐 메고 세 남자를 상대로 싸워서 물리쳤단 말인가.

   숙희는 화원 앞 마당에 나가서 무얼 보고는 더욱 눈물이 나왔다.
그녀의 부친은 뒤로 수갑이 채인 채 땅바닥에 앉아있고.
낯선 남자는 경찰차 뒤에 태워져 있고.
경찰은 정작 싸웠다는 운진은 놔두고 그들이 찾아온 대상이라는 숙희더러 어떻게 할 거냐고 자꾸 추궁하는 것이었다.
숙희는 결국 운진을 향해 돌아섰다. "나더러 어떻게 하라구?"
   "예스 또는 노, 둘 중에 대답해요."
   "차지를 원하면... 어떻게 되는데?"
   "세 명 모두... 맘대로 하세요."
   운진이 숙희를 향해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접근 내지는 연락 금지를 받던지 말던지."
숙희는 운진의 툭 내뱉듯 던진 말에서 어떤 싸한 것이 심장을 후비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차라리 소름끼침 같은 것이 그녀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나, 어떤 일이 있어도 운진씨랑 안 헤어진다고 했잖아."
숙희의 그 말에 운진이 식 웃었다.
그가 경찰에게 사고 보고서는 받겠고, 이번 케이스를 언제고 열 수 있는 근거를 달라고 했다.
경찰이 신고서를 넘겨주며 일련번호와 연락 방법 그리고 그 시한이 십년이란 것을 일러주고. 왜.
상대가 아녀자라서 만일 성추행으로 걸면 더 길게 갈 수도 있으니까.
경찰은 두 동양 남자를 백차에 싣고 떠났다.
어디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운진이 귀를 기울여 듣더니 매장 문으로 향해 갔다.
숙희는 경찰차 두 대가 사라진 빈 길을 바라다 보며 한숨과 눈물을 함께 했다.
그녀는 뒷통수가 또 아파서 눈물이 났다.
   "숙희씨!"
   운진이 수화기를 들어 흔들었다. "회사요!"
숙희는 천천히 걸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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