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그녀의 그 행동에 속으로 놀래고 당황했지만 겉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애써 감추었다.
소위 국 간이 입에 맞나 보려 했다는데.
"국이 서울식이네요."
운진은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의 삼촌이 수저를 내저었다. "엄밀히 말하면 경기도식이지."
"경기도나 서울이나..." 그의 모친의 맞장구였다.
숙희는 충청도라 했고.
진희는 전라도라 했고.
영진씨는 어디랬더라...
운진은 자신을 줏대없다고 여기면서도 옆에 앉아 조용히 밥 뜨는 여인이 경기도라 하니까 갑자기 친근감이 든다. "어... 엄마가 하는 식과 똑같네요."
그런데, 그녀가 무슨 이유에선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쿡 하고 웃었다.
"얘가, 운진이가 올케더러 엄마라니까 우습나 봐."
그의 숙모의 그 말에 그녀가 웃음을 참느라 더욱 애를 썼다.
"엄마가 뭐 어때서. 자식이 환갑이 넘어도 엄마 앞에서는 엄마자식이지."
삼촌의 말이었다.
그 때 이 집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헬로, 에브리원!"
혜정이가 소리치며 들어섰다. "정화언니?"
혜정이가 뽀르르 달려와서는 그녀의 목을 안았다. 이어서 운진의 목을 안았다.
"한 쌍의 그림이네용!"
혜정의 그 말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특히 그의 부친 오씨가 저녁 내내 침묵이다.
정화라는 그녀가 다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녁상에 올라왔던 것들이 전부 운진의 입에 잘 맞았다.
게다가 정화란 여인이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는데.
손놀림이나 그릇 치우는 솜씨가 한 두해 물일 해 본 수준이 아니었다.
운진은 속으로 끌탕의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소위 십할 일났네 처럼.
소위 친척의 중매에 여자를 만나고는 곧바로 식을 올리는 그런 광경이 눈 앞에 보였다.
"둘이, 소화도 시킬 겸 바람이나 쐬고 오지?"
그의 삼촌의 말이었다.
운진과 정화는 마치 명령에 따르는 것처럼 얼른 움직였다.
혜정이 따라 나서려는 걸 그녀의 모친이 붙잡아 앉혔다.
정화가 처음에는 거리를 두고 걷더니 차차 가까이 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먼저 팔짱을 했다.
운진은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는 화원에다 두고 온 숙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화원에서 이상한 살림을 사는 숙희와 오늘 정식으로 대면한 정화를 비교하고 있었다.
누가 만일 그에게 정말 결혼생활이란 것을 할 만한 여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는 벌써 오늘 처음 인사한 정화를 꼽는다.
"밀씀이 참 없으신가 봐요?" 정화가 참다 말을 걸었다.
"아, 녜... 말주변이 없다 보니...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어서요."
"아까 식사 하실 때도 말씀 없으셔서... 찬이 입에 맞으시는지 어쩌신지 내 궁금했어요."
"아, 녜... 음식 솜씨가 아주 훌륭하십니다."
"다행이네요."
"..."
운진은 말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 하는데.
그는 이상하게 입이 안 떨어진다. 실은 언약을 주고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운진은 동네를 한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삼촌이란 이가 일찍 왔다고 두 남녀를 손가락질 했다.
그의 부친이란 이는 헛기침을 했다.
그의 숙모란 이가 그만 가자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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