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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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6. 29. 10:30

   병선이가 옛여자 친구를 대동하고 사촌형을 찾아왔는데.
운진은 마침 뭘 사러 나갔고.
숙희가 집에서 입는 옷차림으로 있다가 문을 열었다.
병선의 눈이 당연히 휘둥그레졌다. "어? 여긴 어떻게..."
   "아. 안녕하세요."
   숙희는 그를 교회에선가 본 적이 있어서 기억하고 인사를 건넸다. "운진씨 금방 오는데요."
병선이가 어 네에 하며 우물쭈물거렸다.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금방 온다고 하고 나갔어요."
   "어, 네에..."
병선이가 옛여자 친구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녀는 체구가 작은 고로 한참 차이 나는 숙희를 거북해 하는 모양이었다. 만일 그녀가 숙희와 나란히 선다면, 머리 꼭대기가 숙희의 어깨선에 나란할까.
병선이의 눈이 숙희의 뒷모습을 훔쳐보며 휘번덕거린다.
숙희는 집에서 아무렇게나 입고 있는데.
그냥 입은 듯한 추레이닝 바지 모양새도 괜찮아 보이고, 무엇보다도 몸매가 한국 여인치고 보통 글래머 타입이 아니다.  
   게다가 저렇게 끝내주게 생긴 여자가 아예... '여기서 같이 사나?'
   성이야 말로 돈 환이잖아!
병선은 사촌형에게 질투가 인다기 보다는 부러움이 앞선다. 대체 몇 여자를...
그러니까 병선이가 순간적으로 따져봐도 진희로부터 영진 그리고 성가대의 쏘프라노 여자. 그리고 이젠 아예 들여앉히고 같이 사는 여자까지.
   '어쩐지 교회도 아예 안 나오고 바쁘시더라니!' 병선은 사촌형이 점점 부러워졌다.
숙희는 서툰 제스처라도 부엌을 기웃거렸다. "뭐 마실 거, 차라도..."
그 때 화원 뒷문이 밖으로부터 열리며 이 자식은 또 왜 온 거야 하고 중얼거리는 운진이 들어서는데 양손에 샤핑 봉다리가 주렁주렁이다.
운진이 우선 병선이부터 눈으로 찾았다. "왜 왔냠마!"
허걱!
그의 그 고함에 제일 놀란 쪽이 숙희였다.
   "저기! 손님 와 계셔!" 숙희는 운진에게 눈을 흘겼다.
운진이 부엌으로 곧장 들어갔다. "쟤가 무슨 손님이예요!"
숙희가 되려 무안해서 병선에게 인사를 보냈다.
   "괜찮아요. 성 원래 저러세요."
   "요새 일 좀 터지냐?" 운진이 부엌에서 고함쳤다.
   "현장 몇개 땄수. 한 이년은 그냥저냥..."
운진이 들여간 물건을 다 치웠는지 빈손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가 그제서야 또 한명의 여인을 발견하고는 얼른 인사를 보냈다. "어이쿠! 진짜 손님이 와 계시네?"
병선이가 여자친구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늘 말하던 사촌 형이셔 라며.
그런데 여자가 운진을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이다.
운진은 가만 있어 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치 어디서 봤더라 하듯이.
   잠시 후 병선이가 곁에서 감자도 썰고 파도 다듬어서 자르고 도우면서 남자 둘이 부엌에서 저녁을 만드는데. 
여자 둘은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아서 자꾸 끊기는 대화를 이어가 보려고 애쓴다.
두 여자는 근 삼십분 넘게 말을 서로 건네는데, 공통되는 이야기를 못 찾는다.
숙희는 아느니 금융 관계에 대해서 뿐이고.
병선의 옛여자 친구는 입만 벌리면 드라마 얘기이다.
게다가 숙희는 운진이 미리 건네준 맥주를 조금씩 마시고 있는데.
그 여자는 병선이가 따 준 맥줏병을 그냥 놔둬서 김만 빼고 있다. 
   "자아! 식사합시다아!" 병선이가 소리쳤다.
숙희는 마시던 병을 얼른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 여자는 눈을 내리 깔고 새침을 떨고 있다.
   화아! 뉘집 와이프가 될 건지는 몰라도 엄청...
숙희는 그럴 때 비유하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운진씨한태 저러지 말아야겠다! 
남자들이 그릇들을 식탁으로 올리길래 숙희는 얼른 일어나서 갔다.
키 작은 여인은 새촘하게 앉아서 눈까지 내려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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