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배니아 농원에서 물건들이 왔는데, 정말 그들이 약속한 대로 할인된 가격에 왔다.
"경쟁이라는 게 참 무서워, 응?"
숙희는 욕을 섞어서 좀 언짢았지 그래도 저 원하는 것을 얻고 마는 운진이 기특해서 그를 뒤에서 살짝 안아주며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내가 잘못 오다 한 바람에 손해난 거 찾았어?"
"그것 때문에 싸운 건 아니요."
"그래도 손해난 건 찾아야지."
"오다를 잘못한 게 아니라... 망가진 물건을 아무렇지않게 보낸 것에 화가 났던 거요."
숙희는 그의 등에 얼굴을 기댔다. "어쨌든..."
"우리가 동양인이라 이거지..."
"..." 숙희는 대꾸나 맞장구 대신 그의 등에 얼굴을 부볐다.
이번에는 펜실배니아 농원에서 추레일러에 리프터(lifter)를 뒷꽁무니에 달고 왔다.
그것을 추레일러 운전자가 작동해서 물건을 내리니 일은 실로 삼십분 만에 끝났다. 다른 때 같으면 죄다 손으로 내려서 대여섯 시간은 족히 걸렸었다.
생전 안 따라오던 리프터를 달고 온 걸 보니 그 쪽에서도 시간을 절약하려는 모양이었다.
'저런 거 하나 있으면 여기 일 하는 데도 엄청 수월할 텐데...'
운진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숙희가 들었다. "저런 거 비싸?"
"비싸겠죠!"
"여기 장비들 있는 거 보면, 저런 거 하나 있어도 되겠는데?"
"저런 거 중고 안 나와 있나..."
추레일러가 검은 연기를 풀풀 뿜으며 화원 앞을 떠났다.
숙희는 여전히 운진의 등 뒤에 얼굴을 대고 있다.
운진은 갑작스레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 자세로 앞길을 바라다 봤다.
둘이 그런 포옹으로 한참을 있는데.
숙희가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꽃을 잘못 오다 해서 엄청난 손해를 끼친 줄 알고 걱정했는데, 그가 싸워서라도 찾아낸 셈이니 마음이 풀리고. 그리고 그가 말 한마디 않고 넘어가는 것이 너무 고맙다.
누가 사르락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이제 구경할 만큼 해서 지겨우니까, 그만들 하지?" 운서였다.
숙희가 후닥닥 떨어졌다. "아, 언니."
"이거... 내 예상이 전혀 빗나가는데?"
"네?"
"난 숙희가 운진이를 리드할 줄 알고 기대했는데. 의외로 숙희가 운진이에게 치대네?"
"네?"
운진이 픽 웃고는 화원 뒷뜰로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숙희는 운서언니에게 인사해 보이고는 운진의 뒤를 쫓아갔다.
"어렵쇼? 점점..."
운서의 그 말에 운진이 귀 가렵다는 듯이 제 귀를 손으로 털었다.
"점심에 뭐 먹을 거니!" 운서가 소리질렀다.
숙희는 동심에서처럼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운진을 향해 뛰어갔다. "점심 뭐 먹어?"
"비빔밥 해 달랩시다."
그래서 점심을 고추장을 듬뿍 넣어 맵게 한 비빔밥으로 했는데.
숙희는 주체 못할 정도로 몰려오는 졸음에 안채 소파에 쓰러졌다.
"너 없는 동안 신경쓰느라 몹시 피로했다가 이제 긴장이 풀리나 보다."
운서가 한껏 낮춘 음성으로 한 말이다.
"겉보기 보다 겁도 많고, 맘이 굉장히 여려요, 누님."
"저번에 언뜻 말하는 걸 들었는데. 남자를... 두려워 한다지?"
"그, 아버지란 새끼가..."
"쉬잇! 그런 호칭으로 하지 마라."
"누님이 보셨어야 해요. 챙피도 그런 챙피가 없었어요."
"그래도 자기 집 식구 흉 보면 다들 싫어해..."
"식구나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