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따라, 물론 주말인 점도 있지만, 아니, 주말에 결승 리그를 향해 치닫는 야구나 이제 마악 그 해의 리그를 시작하는 미식 축구 경기는 기본이기 때문에.
어느 올-유-캔-이트 부페는 보통 붐비지않았다.
음식들은 나오자마자 동이 났다.
사람들이 책임자를 부르고.
음식을 갖다 놓는 스패니쉬들이 무서워서 뒷걸음질 치고.
특히 휠체어에 의지하는 이가 음식을 가지기에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운진은 김이 무럭무럭 올라가는 주방의 그릴을 보다가 의자에 와서 앉았다.
같이 주문한 맥주는 벌써 나와서, 그것도 진희랑 거의 다 비웠는데, 정작 본 코스로 먹어야 할 음식들이 언제 나올 줄을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술매상 올리나, 제기!" 운진이 다 들리도록 투덜댔고.
숙희는 한 테이블 건너 부친과 마주 앉아 있다가 그런 한국말을 들었다.
남자가 좀 진득하지 못하고선!
숙희는 점점 남자들에 대해 신임과 의지가 사라지는데, 점점 더 사라지는 요즘이다.
어련히 나올 때 되면 안 나올까봐 사내가 안달은!
숙희는 속으로 고개를 수 없이 젓는다.
나는 절대로 연애 같은 거 안 한다!
두고 봐라!
그녀는 하워드의 친절을 잠깐 생각해 봤다. 하지만 노 웨이!
하워드는 그의 책상에 세워져 있는 사진패로 말해주듯이 아리따운 금발의 부인과 앞니가 빠져 헤 하니 웃는 딸이 있는 기혼자이다.
숙희는 자신의 빗나간 추적을 나무라듯이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을 차마 마실 자신이 없다. 잔에서 찰랑찰랑 흔들리는 맑은 액체가 그녀의 눈물을 담아 놓은 것 같다.
한국으로 도로 나갈까...
그녀의 온갖 상념은 부친의 말 투구로 깨어졌다.
"일은, 힘들지 않니?"
"아뇨."
숙희는 부르짖고 싶은 말이 있다. 아빠의 두번째 부인이 내 목을 졸라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희모가 던진 말이 궁금하다. 애비도 족보도 모르는 년이라는 말.
그러나 그녀는 묻지않고 넘어가기로 결심한다. 왜.
만일 물었다가.
만일 부친이 어떤 사실 얘기를 들려줘서.
만일 어떤 기막힌 역사 사실을 알게 되면...
나는 감당 못할 테니 죽을 거다...
숙희는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가 떼었다. "아빠랑 술 하는 거, 진짜 오랫만이네?"
"미국 와서는 처음이지?"
"그런가... 그런가 보네, 아빠."
"너랑 한국에서는 술 참 많이 했는데."
숙희는 그 말에 술 마시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체대에 합격했다고 축하술을 사 준던 아빠.
좋게 보면 깨였으며 현대판 아빠라고 칭찬해 줄 수 있었겠는데.
그랬던 아빠가 이제는 요리조리 몸 도사리는 꾀쟁이로 밖에 안 보인다.
그녀의 회상은 어떤 자의 우리 말 외침소리에 깨어졌다.
"자아! 먹읍시다!"
운진은 게 다리를 한 접시 담아와서 식탁에 놓았다. "맥주 더 시킵시다."
진희가 게 다리 하나를 잡는데, 누가 다가와서 그녀를 딱 때렸다.
영진이 한 손을 쳐들고는 다른 손으로 진희더러 가라고 내저었다.
"영진씨가 여긴 웬일로? 에? 이거 뭐야?"
운진은 상을 썼다. "어떻게 된 거야?"
진희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다가 일어섰다. "주일날 교회에서 봐요, 운진씨."
"뭐야, 이거?"
운진은 뒤늦게 나타난 영진이 진희를 쫓는데 그렇다고 가는 진희는 뭔가 했다.
영진이 진희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