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이번에는 운진이 정화네로 저녁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그것도 운진 혼자.
운진은 누이의 눈총을 받으며 화원을 떠났다.
'너 어쩔려고 그러니?'
누이의 말이 그의 귓전에 뱅뱅 돌았다. '숙희네 아버지가 놈팽이들을 몰고 와서 난동을 피운 것 때문에 숙희랑 안 좋은 거야?'
'그렇더라도 지금 너의 행동은, 숙희에게 말하는 게 나중에 사태 수습에도 이로울 걸?'
'프로포즈 했는데, 툇짜 놓더라구요.'
운진의 그 말에 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 아니면, 다른 데 룸메이트로 가던가 아니면 적당한 남자가 프로포즈 하면 가 버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운진은 평소 숙희에 대해 의심스러운 부분을 누이에게 말했다.
'의외로 남자 관계가 헤푼 것 같습니다.'
'상사가 조금만 뭐라 하면 혹 셐스를 요구하나 하는 망상에 젖어있고.'
'뭐가 안 풀려서 고민하는 것 같다가 쉽게 해결하고 되려 승진하는...'
운진은 정화의 가족이 아주 단란한 구조의 타운홈에 세들어 사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의 집 안으로 안내 받아 들어서고 나서야 왜 어른들이 이 여인을 찍은지 곧 알게 되었고, 그의 마음이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해 버렸다.
아마도 정화는 장녀이며 그 밑으로 동생이 세 명.
그것도 바로 밑으로 내리 남동생에다가 막내가 여동생.
형제자매가 많은 집의 여자를 며느리로 맞아 들이면 씨앗을 많이 본다는 미신?
아이들이 한줄로 서서 인사를 꾸뻑 하고는 다들 이층으로 달아났다.
만일 운진이 정화를 아내로 삼으면 내리 뒷바리지 해줘야 할 동생들이 셋이다.
그는 모친과 삼촌 이모들을 연상했다.
그리고 처갓집 식구들을 다 먹여 살렸다는 아버지에다 자신을 비교했다.
숙희는 이틀째 연거퍼 안 보이는 운진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녀는 운서언니가 집에 가기 전에 맞춰서 부지런히 퇴근해 왔다.
그래도 여섯시가 한참 넘었는데 화원은 닫혔고...
부엌은 불끼 하나 없이 썰렁했다.
순간, 숙희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
'나더러 나가라는 뜻인가?'
숙희는 소파에 무너지듯 앉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뜻 모를 눈물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눈치없이 굴었나...'
숙희는 한참 후 눈물을 다 딲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옷이나 갈아입고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허기를 채우자고 움직이려다가 부엌 들어가는 기둥에 붙은 쪽지 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리로 가서 그 쪽지를 들여다 봤다.
숙희ㅡ
밥은 보온밥통에 들었고
반찬은 냉장고 안에
그리고 국은 다 식었을테니 데워서 먹도록
ㅡ언니ㅡ
숙희는 그 쪽지를 떼었다가 도로 붙였다. 그리고 그 쪽지를 하염없이 들여다 봤다.
맨 밑에 씌여진 단어 하나.
언니.
그녀에게 진짜 언니가 있는 느낌이다.
그제서야 숙희는 공희가 생각났다.
나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그래도 날 잘 따랐었는데...
그녀는 부엌벽에 달라붙은 수화기를 떼었다가...
그녀는 도로 걸었다. 나에게 가족이 있어?
피치 못해 나와서는 이렇게 얹혀 사는 나를 찾아와서 행패 부린 이들을 식구라고 불러야 해?
게다가 현재 운진씨는 나 때문에 처벌을 보류하고 있는 실정인데.
날 언제부터 딸이라 하며 아까워서 끌고 가려 한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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