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6-5x055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6. 30. 10:48

   숙희는 저녁을 먹고 치운 후, 화원 뒷뜰에 풀어놓여진 개를 가 봤다.
개가 제법 큰 크기의 개집 안에서 얼른 나왔다.
그녀가 펜스 너머로 손을 넘기니 개가 제 머리통을 갖다 대고 비볐다.
그녀는 펜스 봉에 걸린 개 목줄을 끌렀다.
개가 벌써 알이차리고 겅중겅중 뛰었다.
   "가만 있어어!"
숙희가 개야 알아듣든말든 우리 말로 야단치듯 말했는데, 개가 얌전히 정지했다.
그녀는 개의 목끈에다 개줄 고리를 걸고, 펜스 문을 열었다.
개가 얼른 나와서는 그 큰 몸집을 흔들며 꼬리를 쳤다.
   "너 아무 데고 똥 싸면 안 돼. 알았지!"
그녀는 개가 알아듣든말든 그렇게 말했다.
개가 딱 한 보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더도 덜도 아니게 딱 한 보를 앞서서 가는 것이었다.
숙희는 어두워진 밭길이지만 개가 앞에서 가니 의지가 되었다.
   "뛰지 마?"
그녀는 개를 걸리는 것이 아니라 개가 그녀를 인도하는 꼴이 되었다.
개는 어두운데도 밭고랑을 잘 알고 간다.
숙희는 까만 흙에 대조되어 희미한 하늘이 닿은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다 보며 걸음을 마치 허공을 걷듯 떼었다.
그녀는 문득 뒤를 돌아다 봤다.
허걱!
이제는 화원 건물도 안 보였다.
개가 가는 방향은 그냥 암흑이다.
   "그만 가자, 응?"
그녀는 개줄을 잡아 당겼다.
그랬더니 개가 얼른 돌아서서 오던 길을 되돌아서 방향을 잡는 것이다.
   "앞장 서. 아유, 무섭다. 괜히 너 따라 왔나 봐."
   숙희는 개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래도 뛰지는 마?"
그런데 저 멀리서 휘이익 하는 휘파람 소리가 났다.
껑!
개가 펄쩍 뛰었다.
   "안 돼! 뛰지 마!" 숙희는 개줄을 힘껏 잡아 당겼다.
앞에서 희미한 물체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개가 앞서 가면서 엉덩이채로 흔들어 댔다.
   "개가 짐승을 만나면 어쩔 뻔 했어요."
   운진이 코 앞에 와서 손을 내밀었다. "개들은 짐승 만나면 싸우거나 맹속력으로 달아나요. 그러다가 멋모르고 물리거나 다치죠."
운진이 개줄을 받아 쥐었다.
숙희는 어둠 속이지만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했다. "우리가 보였나부지?"
   "짐승들은 야밤에 잘 보이라고 눈이 반사하잖아요."
   "반사?"
   "녜. 짐승의 눈 안이 거울 같대요. 그래서 아주 희미한 빛을 감지해도 그 빛을 반사..."
   "말은... 책에서도 보고... 알았지만."
   "밤에 개 눈을 보면 두 눈이 번쩍번쩍 하죠. 내 개지만 때로는 소름끼치도록."
   "..."
   "그렇지만 우리 인간의 눈이 그렇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예요."
   "밤눈 어두운 사람에게는 좋겠네, 뭐."
   "그러면 좋죠. 근데, 두 연인이 밤에 데이트 하면서 짝 키쓰하려는데. 쳐다보는 연인의 눈이 개 눈처럼 빙글빙글 반사하면."
숙희의 손이 올라가려다가 말았다. "그만 해."
그리고 숙희는 절로 소름이 끼쳤다. 남녀가 어둠 속에서 키쓰하려는데 서로의 눈이 짐승의 것처럼 반짝거려?
숙희는 그의 등을 살짝 쳤다.
   "우리 얘기 좀 해요." 운진의 말이 갑자기 톤을 잡았다.
허걱!
숙희는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숨이 막혔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6-7x057  (1) 2024.06.30
6-6x056  (0) 2024.06.30
6-4x054  (0) 2024.06.30
6-3x053  (0) 2024.06.30
6-2x052  (0)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