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9-1x081 미국에 오니 죄다들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18. 06:48

미국에 오니 죄다들 왕년에 한국에서 어떠어떠 했는데

    11월 들어 거리는 곧 다가올 추수감사절과 홀리데이 분위기로 벌써 흥청거린다.
운진은 사촌으로부터 숙원이던 추렄 수리를 받았다. 대형 추렄 렌트 컴퍼니에서 정비공으로 일하는 그 사촌이 마침 잘못 배달된 머플러 시스템 일체를 그의 상사로부터 실비에 넘겨 받은 것이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약간 안 맞는 각도를 일터에서 불에 달구어 좀 더 구부러지게 한 것뿐.
둘이 토요일 하루 종일 추렄 밑에 들어가서 갈아 끼웠다.
   "시동 걸어보슈." 사촌이 추렄 밑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운진은 클러치를 밟고 추렄의 엔진을 시동 걸었다.
부릉!
그 소리가 다였다. 평상시처럼 우다다다 하는 소리가 안 났다.
   "함마치!" 운진은 기분이 좋아서 말했다.
   "이백불만 주슈."
그래서 운진은 이백오십불을 주었다.
그 사촌 동생이 좀 우물쭈물거리다가 갔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병선이가 화원으로 찾아왔다.
   성 마후라 갈았대매 하고.
병선이가 어두운데도 이리저리 보고 손으로 뭘 잡고 흔들어 보기도 했다. "얼마 줬다구?"
   "이백불 달라길래 이백오십불 줬다." 
   "그 씨발놈!"
   "왜."
   "그 씨발새끼, 지 회사에다는 백오십불 줘놓고 성한테 이백불 부른 건데. 근데 나더러는 딱 이백불만 주더라면서 흉본 새끼가 사촌? 이런 개씨발놈의 새끼!"
병선이가 화원 안으로 들어가서는 전화기를 찾았다.
   "야, 야, 야! 놔 둬!" 운진은 그래서 그 사촌이 좀 우물거리다가 받아 갔구나 했다.
   "꼭 쪼다 같은 것들이 다른 데다가는 못 하고 친척한테 욹어먹어요!"
병선이가 전화기를 잡았다.
운진은 수화기를 빼앗아서 도로 걸었다. "됐어. 나 기분 좋으면 됐구. 걔 생활비에 보태쓰면 된 거야. 그리고 하루 종일 애썼는데 그 정도 값어치 된다."
   "저기 동양식품한테는, 새끼, 더 못 받으면서도 맨날 고쳐주고. 정작 형한테는..."
   "덕분에 그 동양식품에 그 이모 가시면 잘 해준대매."
   "간사한 인간들!"
   "그러면서 사는 거다."
   "내가 지금 엄마랑 걔네 집에 있다 오는 거거든. 새끼가... 도로 가서 입을 콱!"
   "왜. 나를 고문관으로 말하대?"
   "... 됐어, 성. 내가 알아서 할께."
   "뭘 또 알아서 해. 넘어 가." 운진은 병선의 알아서 할 게란 허풍에 대해서 너무 익숙하다.
   "하여튼 성한테는 더 말 안 하고, 내가 알아서 할께."
   "미국까지 와서 친척 간에 너무 그러지 마라. 나중에 다 의지될 사인데."
   "의지? 난, 사촌이건 삼촌이건, 다 싫어. 씨발 것들! 지들이, 한국에 있었을 때 맨날 끼니가 오락가락하던 것들이 미국 와서 먹고 사니까, 이것들이 눈깔에 뵈는 게 없어요."
   "..." 그건 사실이다.
   "그것들 성네 가서 얼마나 뜯었어. 큰이모가 제일 손위라고 삼춘 이모들 다 키워주고 학비 대줘가며 공부시켜. 시집 장가들 갈 때 혼숫감들 다 해줘. 조카새끼들 태어나면 가서 한 살림 들여놔 줘."
   "..."
   "그렇게 산 것들이 미국 와서 입에 밥이 들어가니까... 씨발, 전부들 몰아다가, 씨발! 뻑!"
   "너두 세월이 이만큼 흘렀으면, 잊을 때도 안 됐니?"
   "오죽하면 인간 못 되는 것들을 머리 검은 짐승은 은혜도 모른다 하면서 흉볼까."
   "부모네들로부터 내려오는 자격지심이야. 그만 해라."
   "울 아부진 옛날부터도 그랬지만 지금도 큰이모부 보면 그냥 굽신대고 성님 성님 하는데. 울 아부진 나더러 늘 그 성님 은혜 잊으면 개 만도 못 하다고 생시 때도 술 취했을 때도..." 병성은 그 쯤에서 말을 그쳤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9-3x083  (0) 2024.07.18
9-2x082  (0) 2024.07.18
8-10x080  (0) 2024.07.17
8-9x079  (2) 2024.07.17
8-8x078  (1) 2024.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