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래도 언니한테는 아는 척이나 내색을 못 하죠. 제가 언니나 오빠한테 먼저 물어보면 제가 형부랑 이렇게 뒤에서 대화하는 걸 다들 알죠.”
“그렇네, 참! 내가 생각이. 그럼, 처제만 속으로 알고, 맘대로 해요. 나가 주든 지 말든 지.”
“가겐 지켜야죠. 그것 마저 닫게 하면 어떡해요. 먼저 판 가게도 지금 아주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그거야... 언니가 알아서 하겠지. 뺏기든 뺏든. 난 상관 안 하니까.”
“수중에 돈은 있으세요? 언니가 집에 있던 돈은 다 내다 쓴 모양인데.”
“며칠치 매상이 있는데, 좀 그러네. 하지만 가게를 계속 열어서 돈 좀 충당하라구. 오빠 감시 잘 하구.”
“또 돈에 손 대죠?”
“흥! 어제도 백불 빼서는 형록이랑 술 먹고 날 때릴려구 하더라구.”
“네에? 참! 그래서 많이 다치셨어요?”
“아니. 내 스스로 넘어져서 코만 좀 째졌는데, 영호는 내가 발로 차서 코 입술이 터졌어.”
“잘 하셨어요. 형부도 보통 화나신 게 아니었나 봐요?”
“흐흐흐. 화 보다는 겁이 나서 얼떨결에 찼는데, 그게 입에 정콩으로 맞았나 봐. 집에 와서 경찰을 부르고 언니랑 오빠가 쌩난리를 폈잖아.”
“경찰씩이나! 형부, 지금 어디세요?”
“지금, 디 씨(Washington D. C.) 쪽으로 가고 있어. 아침 길이라 밀리네?”
운진의 그 말은 거짓이었다. 그는 볼티모어 외곽의 에셐쓰란 동네로 향하고 있으면서.
“디 씨라면... 거기 누가 있어요?”
“아니. 여기 벌티모어를 피할라구. 다른 일 좀 찾아보고. 아무 일이건 하면서 수속을 밟아야지. 아무래도 언니랑은 이혼해야겠어. 도저히 같이 살 용기가 없어.”
“그럼요. 정나미 떨어지죠.”
“처제 아니였으면, 난, 아무 것도 모르고 언니가 하자는 대로 했겠지, 뭐. 아, 화나!”
“저도 첨엔 참 힘들었어요. 음, 형부 뵙기가. 언닌 점점 미쳐서 밖으로 돌아가는데 형부는 가게 일에만 매달려 있고, 애들은 애들대로 삐뚜루 나가고.”
“애들한테는 미안한데, 어쩔 수 없었다는 걸 나중에 처제가 애들한테, 아냐, 관둬. 지 엄마가 알아서 말하겠지. 어련히 알아서 말 잘 안 하려구. 나만 나쁜 아빠 만들겠지, 뭐.”
“그러겠죠. 지금도 어차피 아빠를 전혀 상관치않게 하는데요, 뭐.”
“처제.”
“네.”
“우린, 앞으로, 못 만나겠지?”
“그래야 되겠죠.”
“그렇겠지. 그래야지. 그래야 되겠지.”
“언니와 이혼한다고 저랑 맺을 수는 없죠.”
“그렇게 까진 생각 안 해 봤구.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래도 처제가 날 제일 많이 생각해 줬는데.”
“힘을 내세요. 아직 연세가 있으시니까, 뭘 시작해도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땡 큐! 지금 사실 기분은 엿 같은데, 그래도 처제랑 통화하니까 마음이 좀 가라앉네.”
“다행이네요.”
“가끔 연락해도 되겠지?”
“그러세요. 저도 형부 소식이 궁금해질 거예요.”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운진은 모친과 누이가 다시 합쳐 살고 있는 곳으로 갔다.
처제가 아는 척은 않겠지만 일단은 다른 곳으로 가는 척 둘러 댔으니 설마 그 곳으로 갔으려니 하고는 상상을 안 할 것이다. 특히 그가 모친과 사이가 여태 안 좋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영란도 설마하니 이쪽으로는 염두를 안 둘 것이다.
식구들을 만나면 아마 그의 실수들을 꼬집어 말할 것이다.
남자이지만 어떻게 여자가 여덟달 만에 아이를 낳아도 의심을 안 했는가.
두번째 딸도 의심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며느리란 게 여태 살면서 시집을 거들떠 보지도 않지않는가.
아버지가 너 미워서 돌아가실 때까지 돈 치운 데를 일러주지 않으셨다 등등.
비로소 운진은 숙희와 헤어지게 된 실수들을 되새겨 보았다.
누님이 숙희씨 얘기를 아는 대로 해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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