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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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0. 04:20

   18년 전의 봄 운진은 숙희의 부모를 만나러 갔다. 
집에서 계속 선을 보란다는 그녀의 말에 운진은 실망이 되었었다. 실망은 되지만 대책이 없는데 숙희의 충고로 그녀의 부모를 만나러 가기로 하게 되었다.
   “원래는 여자가 남자 집에 먼저 찾아가서 보이는 거 아닌가?” 운진이 중얼거렸다.
   “제가 좀 밀리는 실정이라 그래요.” 숙희가 후후 웃었다.
   “왜요?”
   “엄마가 계에 나가는데, 거기에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 조카를 자꾸 저랑 소개하자 하나 봐요. 엄마는 이미 본 눈치구, 압력이 좀 거북해요.”
   “제가 가서 어떻게 해야하나요?”
   “이래서 내가 운진씨를 좋아한다니까요? 이렇게 하세요. 지금 운진씨 칼리지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는데 그거 끝나면 원래 전공한 걸 살려 보려 한다아. 그때까진 시일이 좀 걸리는데 숙희가 기다려줬으면 한다. 허락해 달라. 할 수 있죠?”
   “그건 사실이 아닌데요? 뽀롱나면 문제가 커지지 않겠어요?” 
   “일단 그렇게 하세요.”
   “저어, 저기 말이죠. 전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요.”
   “뭐가요?”
   “그러니까 제가 숙희씨의 결혼 상대자로 부모님을 만나 뵈라는 건데, 먼저도 말했지만 저는 능력도 없고 자신도 없어요. 저랑 결혼하시면 후회하실 거예요.”
   “운진씨!”
   “예, 예.”
   “아니, 무슨 남자가 그래요? 제가 지금 운진씨한테 결혼해 달라고 떼 쓰는 거예요?”
   “그건 아니죠! 저도, 저도 숙희씨 좋아합니다. 저도 정말 숙희씨와, 응... 하고 싶어요.”
   “그런데요?”
   “전, 보시다시피 가진 게 하나도 없어요.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집이 어떻게 될 것도. 제가 지금 그나마 하는 공부도 그만둬야 하고. 뭘 하든 전 돈을 벌어야 해요. 어쩌면 사춘동생 따라서 싸이딩 나갈 지도 몰라요. 사이딩요. 노가다 일요.”
   “하세요. 돈 벌면 되잖아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뭐가요?”
   “숙희씬 인테리시구, 직장도 괜찮으신데, 저 같은 노동판 사람하고 결혼해서 살 수 있으시겠어요?”
   “아, 나 차암. 날 또 화나게 하시네.”
   “화나시라는 게 아니라, 황을 비교해 봐도, 친구분은 황하고 결혼하면 조건이 더 좋은데, 저랑 결혼하면 숙희씨 자존심이 허락하시겠어요? 황네 잘 살아요. 집도 크고, 돈도 좀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 같이 가난한 사람하고, 결혼하시면 두 분이 친구니까 만났을 때, 숙희씨 챙피하시지 않겠어요? 친구도 서로 좀 맞아야 어울릴 텐데요.”
   “하여튼, 매도 먼저 맞는게 덜 아프다고 하니까, 일단 우리 부모님을 만나주세요.”
   “하이고오, 큰일 났네.”
숙희는 걱정되어서 떠는 운진을 보고 계속 웃어댔다. "너무 크게 긴장하지 마세요. 한표는 이미 얻어놨는데, 나머지 한표가 좀 비중이 커서."
   "비중 큰 그거... 숙희씨 어머니시잖아요."
   "네. 하여튼 저랑 말을 맞춰야 하니까. 어학연수 중이란 걸 꼭 강조하세요. 한국에서 수학을 전공했는데, 영어가 딸려서 그렇다고."
   "거기까지는 맞는 말이구요. 그 다음은요?"
   "만일 우리 집에서, 그러니까, 색시될 여자네 집에서 결혼을 서두르길 원한다면, 일단 약혼을 하겠다아. 그래 놓고 연수를 마치면 어디 취직해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겠다아."
   "그럼, 약혼하고, 나중에 정식 결혼식이라면... 그 동안에는 동거... 해요?"  
   "노! 한대 콱!"
   숙희의 얼굴이 약간 빨개졌다. "잘 나가다가!"
   "약혼식은 돈 안 들어요?"
   "아, 몰라요!" 
숙희는 자존심이 조금 상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어떤 여자인가를 끝끝내 숨기며 그를 밀어 부치는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또 무엇보다도 공희엄마가 하라는 남자와 않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 하면 어떻게 나올 지 걱정이다.
만일 공희엄마가 서슴치 않고 숙희는 밖에서 화냥질 하는 년이라고 불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래서 공희엄마는 한국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친척 하나를 들어오게 하려는 건데...
   운진은 운진대로 사실 영란 때문에 망설여지는데 말을 못할 상황이었다. 물론 영란과 결혼약속 한 것도 없고 양가집에서 아닌 말로 상견례를 치룬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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