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집은 전에 늘 보아왔었지만 그 날 다른 일로 들른다고 하니 운진에게는 마치 수백개의 계단으로 된 성벽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집안을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모친이 대번에 언성을 높였다. “너, 지금 나랑 뭐 하는 거니!”
“사귀는 남자 소개한다고 했잖아요!” 숙희의 말투는 당당했다.
“썩 나가! 예가 어딘 줄 알고 감히!”
그녀의 모친이 운진의 코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그녀의 눈과 입에서 분노의 광기가 쏟아져 나왔다.
운진은 겁도 나고, 한편으로는 오기도 났다. 십할, 날 뭘로 보는거야!’
“아빠!” 숙희가 이층에 대고 고함을 쳤다.
“아빠도 이 이 안 보신단다. 나가! 썩 나가!”
매자는 그를 아예 밀어낼 기색이다. “너두 어디서 이런 놈팽이를 데리구 다니니!”
이런 놈팽이?
운진이 먼저 돌아섰다. “실례했습니다!”
숙희가 뛰따라 나오려 하고 그녀의 모친과 문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오시지 마세요, 숙희씨. 저 갑니다.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세요!”
운진은 그 집을 뛰쳐나오며 분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숙희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 얼른 생겼으면 하고 바랬다.
그렇게 그 때의 대면은 운진의 망신으로 끝났다.
숙희가 코치하고 연습 시킨 시나리오를 써 먹을 기회 조차 없었다.
운진은 그 때처럼 자신에 대해 실망한 적이 없었다...
숙희의 요구에 운진은 차를 버지니아까지 몰아 포토맥 강변의 한 모텔로 갔다.
거기서 숙희가 일을 벌이자고 부추겼다.
오히려 운진이 불안해했다.
숙희가 당당한 걸음으로 모텔 카운터로 갔다.
“이러면서까지 부모님의 허락을 강요하진 맙시다.” 운진은 벌벌 떨었다.
“저도 남자와 외박은 처음이지만, 운진씬 왜 그래요? 왜 그렇게 떨어요? 병 있어요? 그래서 나한테 옮을까 봐 미안해서 떨어요? 할 수 없죠, 옮아도. 여기까지 왔는데.”
“저기, 저기 말이죠, 숙희씨. 우리 이러면 안 돼요.”
“그건 제가, 주로 여자가 하는 말 아니예요?”
숙희가 연기하는 시늉을 했다. “운진씨, 이러시면 안 돼요. 절 돌려보내 주세요... 네?”
“!!!” 운진은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숙희가 오히려 깔깔대고 웃었다.
카운터의 백인 여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로 둘을 지켜봤다.
운진이 고집을 부려 더블 침대가 있는 방을 택했다.
석양이 넘어가는 창가에 나란히 서서 포토맥 강물을 내려다 보며, 둘은 창 밖이 차차 어두워지다가 종말에는 깜깜해지도록 서로 말도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숙, 숙희씨는 처, 처음이세요?"
"운진씨는요?"
숙희는 거짓말 한다는 것이 양심에 떨렸지만 일단은 숨겨야 한다고 다짐했다. 사실 엄마가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숙희의 비밀직업이기 때문이다. 순진한 총각 보내주고 엄마가 하라는 노총각이나 구제...
"전... 경험이 있긴 한데요. 그 경험이란 게."
"사실, 저도 학창시절 아무 것도 모를 때... 선배와..." 숙희는 거짓말 하며 입술이 아파왔다.
"참, 대학 때 선배란 것들이 다 하나 같이..."
운진은 그 말을 하며 문으로 향했다.
자정 넘어 둘은 모텔을 그냥 나왔다.
둘은 결국 아무 일도 만들지 못했다.
운진은 한국에서 대학 동창으로 만난 여인과 헤어지며 하룻밤을 잤다.
그녀가 결혼하기 전에 그에게 순결을 주고 싶다는 애원에 감동해서였다. 둘은 서툴게 관계를 가진 후 헤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집에서 하라는 놈한테 시집을 갔다.
운진이 가족이민 수속으로 한창 바빠서 동창회 등도 못 나갔다가 갈에서 우연히 만나 동창으로부터 옛애인의 소식을 들었다.
몇달 못 가서 이혼했다는...
하지만 운진은 시일이 촉박하여 그녀를 만나지 못 하고 미국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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