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pt.1 13-3x123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2. 02:13

   영호의 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선 후, 운진은 안에서 문을 잠갔다.
   “어, 지금 뭐 하는 거야?” 
영호가 몸을 돌리는데 카운터 뒤에 숨었던 형록이 날쌘 동작으로 날아왔다. 
형록이 사뿐히 착지하고는 반동으로 뛰어 오르며 당황해 하는 영호의 가슴을 밀었다. 
영호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떨어졌다. 
마침 밖에서 안 보이는 구석으로 둘이 얼켰다.
이미 겁을 먹은 영호는 형록이 갈기는 대로 억억 소리만 냈다.
   “니가 인생은 나보다 몇살 선배지만, 대가리는 나보다 한참 어리다! 너 오늘 한번 맛 좀 봐라!” 
형록이 운진의 분풀이를 실컷 시켜줬다.
영호가 얼굴이고 팔이고 엉망되어 엉엉 하고 울기 시작했다.
   “만불어치 팰라면 아직 멀었죠, 형님?”
   “만불?” 영호가 말을 더듬었다.
   “야, 이 새꺄! 복권 돈 건드리면 기계 뺏기고 고소 당하고 잘못하면 깜빵 가, 이 씹쌔꺄!” 
   운진이 영호의 복부를 걷어찼다. “돈 내놔, 이 씹쌔꺄! 아니면 너 오늘 여기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줄 알어! 개새끼, 토막내서 프리저 박스 바닥에 처 박으면 몇십년이고 몰라, 이 새꺄!”
운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영호보다 형록이 더 놀랬다. "어, 이 양반, 말은 참..."
   “너 같이 처자식 없는 놈을, 씨발, 뒈진들 누가 찾냐!  흥, 그래도 명색인 누나가 집에 있으니까, 훔친 돈을 집으로 가져가진 않았을 테고 어디다 감췄냐! 바른대로 말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죽여라, 어디 한번 죽여봐라, 씨발놈, 파리도 못 죽이는 병신이!” 영호가 대들었다.
운진이 이마로 영호의 안면을 가격했다. 
찍 하고 영호의 코피가 터졌다. 
이어 운진의 주먹이 영호의 볼을 후려 갈겼다. 
그 바람에 영호의 머리가 구십도 돌아갔다. 
운진의 오른발이 곧게 뻗어 영호의 턱을 강타했다. 
영호가 맥없이 널부러졌다. 
바닥에 널부러진 영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운진이 주머니에서 스위스 군인 칼집을 꺼냈다. 그가 조그만 칼날을 펼치자 그제서야 형록이 낌새를 눈치채고 가로막았다. 
   “형! 정신차려요! 형!”
마치 죽은 체 하던 영호가 이상한 느낌에 일어났다. 그가 운진을 올려다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운진이 뾰족한 칼 끝을 영호의 목에 갖다댔다. 그리고 그가 낮고 음침한 음성으로, 마치 영화에서 악인이 말하듯, 속삭였다. 
   “영호야. 나 최전방 근무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북놈 하나 대검만 갖고 신체분해 한 사람이다. 그냥 여기서 니 사십년 인생을 마칠래, 아니면, 오늘 이 후로 내 눈 앞에서 사라질래? 응?” 
십년 가까이 함께 일 해온 형록도 처음 보는 운진의 살기(殺氣)였다.
운진과 눈이 마주친 영호가 입술을 바들바들 떨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영호의 바짓 가랭이로 물기가 번졌다. 
형록이 긴장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영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씨발놈! 오줌을 다 싸고! 별 것도 아닌 새끼가 그 동안 형님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었구만!” 
영호가 오줌을 지린데다가 한술 더 떠서 울컥하고 토했다.
형록이 에이그 병신새끼 하며 물러섰다.
운진이 영호의 머리를 잡아서 뒤로 꺾었다. "어떡할래? 꺼질래... 아니면, 프리저에 들어갈래?"
   "이, 시이, 이..." 
영호가 눈을 까뒤집고 운진 즉 매형을 노려봤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근 이십년 조금 못 되게 보아온 쪼다 매형이란 자의 눈빛이 지금은 다르다.
살기. 
영호는 그에게서 살기를 느꼈다. 그것은 악마의 눈에서 나오는 살기였다. 그리고 누이가 가끔 들려주던 챌리아빠의 본성을 보는 것이라고 여겼다.
   '챌리 아빠 진짜 화 나면 딴 사람 된다?'
그 말을 들었을 때마다 제일 웃어댄 사람이 영호였는데. 방금 몇 차례 맞고 보니 사람 칠 줄 하는 주먹에 발길질이었다. 평소처럼 도망 다니고 수줍어하던 자가 아니었다.
영호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왔다. "우리 영아는!"
   "잘 있다. 설마 내 깔치를 어떻게 하겠냐?"
운진의 그 말에 형록이 눈을 들었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1 13-5x125  (0) 2024.08.12
pt.1 13-4x124  (0) 2024.08.12
pt.1 13-2x122  (0) 2024.08.12
pt.1 13-1x121 20년을 지켜온 예의  (0) 2024.08.12
pt.1 12-10x120  (0) 202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