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설이를 타이르고 싶었다.
행여 삼촌의 사진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여자라고, 그의 이혼 소식을 전해주면 혹시 혹 할까 해서 말하는 거라면 잘못된 판단이라고. 그러나 숙희는 레스토랑을 나와서 간단히 작별했다.
숙희는 머쓱해 하는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 무거운 마음으로 근처 월마트로 갔다. 집에서 음식은 안 하지만 그래도 부엌에서 쓸 것들을 고르는데,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근 20년을 혼자 조용히 잘 살아왔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는 기분이다.
설이의 등장이 무슨 징조도 아니고...
그냥 레이어프 당하게 놔둘 걸 그랬나 봐.
그리고 월마트 안에서 숙희는 무얼 봤다. 아니,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봤다. 그러니까 어떤 불륜의 두 남녀를.
그 날 저녁 숙희는 칸도로 돌아가서 술을 좀 과하게 했다.
며칠 후 운진과 영아는 여러 곳을 들러보고는 애나폴리스 근방의 아파트로 정했다. 둘이 동거인으로 방 세개짜리 아파트를 얻고 빨리 이사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
혹시 아이들을 맡게 될 지 몰라서였다.
운진은 영아를 모텔에 내려 주고 가게로 갔다.
가게는 닫혀 있었다. 그리고 보니 일요일이다.
가게 앞은 온통 쓰레기천지에다가 며칠치 배달된 신문이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고 있었다.
신문 배달 추럭이야 새벽에 지나간다. 전날 던진 신문이 땅바닥에 뒹굴든 말든 그들은 새 신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수금하러 왔을 것이다.
가게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나 가게가 닫힌 걸 모르고 온 사람들이 신문을 뜯어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 가게는 안 열렸었다는 말이다.
운진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물통을 땄다.
셔터를 밀어 올리니 셔터 뒤의 유리문이 힘도 없이 열렸다.
안에서 다시 문을 잠그고 가게 안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물건이 마치 이 빠진 것처럼 비었고, 구석마다 배달 들어온 물건들이 뜯지도 않은 채 쌓여 있었다.
상자들을 읽어보니 팔리지 않는 물건들이었다.
‘Fucking salesman! (좃 같은 세일즈맨!)’
그들을 욕할 것도 못 된다. 아무 것도 모르는 호구가 가게를 지키고 있으니 평소 안 팔리는 재고를 여기다 풀었을 것이다.
‘거래를 끊겠다고 몇번 위협을 해야 간신히 반납이 될까...’
복권 기계를 켜보니 메세지가 여러 개 와 있다.
‘5일을 안 열었군! 잘 하면 기계 뺏기겠는데?’
운진은 가게 전화로 복권 찍던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아유, 어떡허나아, 나 딴 데 나가는데, 사장님.”
“아, 이미 그만 두신 거면 저도 딴 데 알아볼 게요.”
그 다음에 형록이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안 계신줄 모르고 며칠 전에 갔더니, 영호새끼 혼자 돈을 챙기고 있더라구요? 손님한테서 받은 돈은 제 주머니로 들어가고 가겟돈으로 잔돈을 주길래, 에라, 이 새꺄, 다 해 쳐먹어라 하고 난 돌아 나왔죠, 뭐. 줄에 선 사람들은 훔치느라 바쁘고. 형님 전화는 불통이고.”
그 형록이는 반 시간도 안 되어 달려왔다.
둘이서 정리를 하고 보니 못 팔 것들 빼고 장사하려면 어림잡아 근 만불어치가 비었다.
불과 두 주도 못 되어 팔리는 대로 다 빼먹은 것이다.
둘은 차마 욕도 안 나와서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었다.
운진은 형록과 맥주를 몇 병 깠다.
둘이서 어떤 모략을 한 후, 운진만 밖으로 나와 셔터를 도로 내렸다.
그리고 빌린 형록의 셀폰으로 영호를 불러냈다. 문 좀 열어달라고.
아직도 거들먹거리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나타난 영호더러 운진이 문을 열어 달라 하니 녀석이 고개를 갸웃하며 쇠고리를 땄다. 매형이란 이가 형록의 셀폰으로 걸었는데 수상한 생각도 안 들었나. 병신새끼!
‘가게 앞이 깨끗하지? 멍청한 자식! 내가 빌려 쓴 전화기의 주인이 어디 있는 지 궁금하지도 않고?'
운진은 영호를 그냥 갈기려다가 밖이다 참자 했다. "열쇠 안 바꿨나 보지?"
영호가 뭐라고 구시렁거리며 셔터를 올렸다. 그리고 그는 아무 것도 모르므로 가게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운진은 뒤 따라 들어서며 형록과의 암호인 헛기침을 한번 했다.
순간 영호가 그제서야 아차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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