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pt.1 13-1x121 20년을 지켜온 예의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2. 02:07

20년을 지켜온 예의

   숙희는 설이의 이름을 감원대상자 명단에서 발견하고는 실망했다. 
   ‘이럴 줄 알았다! 입사 하자마자 감원바람이 불어서 애꿎은 애만 피해를 보네. 달리 방도가 없을까? 다른 부서로 전출을!’
숙희는 설이의 부속 매니저의 이름을 보고는 혀를 찼다. 
설희가 일하는 부서의 매니저인 여자는 숙희를 은근히 미워하는 유태인이다. 
   ‘고의구나! 그럴 줄 알았지.’
숙희가 마악 매리안을 불러서 의논하려는데, 마침 그녀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Hi, Marrianne, I was gonna call you. (헤이, 매리앤, 그렇잖아도 부르려 했는데.)”
   “I know! Here! (알어! 자!)” 
   매리앤이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This is from Jeff. (제프에게서야.)” 
   "허?" 
쑤는 좀 전까지 갖고 있던 인사발령 서류를 집었다. 그녀는 매리앤이 보여주고 있는 서류와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손을 내밀었다. 
   “We keep Sunny. And Jeff cut her manager. (우리 써니 갖고. 제프가 걔 매니저를 잘랐어.)”
   “What?”
   “Yep! Done! (그래! 끝났어!)”  
매리앤이 방을 나갔다.
   숙희는 제프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고맙고 놀랐다고 말해주었다.

   이 날 늦게 퇴근한 숙희는 어둑해져가는 주차장을 걷다가 나무 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질겁을 했다. 순간적으로 손에 쥔 셀폰을 펼쳐서 경비나 경찰을 부르려는데 그 그림자가 말을 했다. 
   “아주마, 나 마잌이고, 누나 써니예요”
그 말에 안심한 숙희는 전화기를 내렸다. “오, 너희들이구나. 웬일이니?”
설이가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꾸벅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뭣들 해. 무슨 볼 일 있니?”
   “아줌마, 저, 레이엎(lay off) 됐어요.”
   “응, 그래. 근데 다시 리인스테잇 됐어. 그러니 넌 걱정 말고 정상적으로 출근해.”
   “네? 언제요, 아셨어요?” 설이가 반색을 했다. 
   “그럼. 내가 인사 책임인데?”
   “아줌마, 정말 고맙습니다!” 설이가 허리를 구십도로 굽혔다.
   “그리고, 새 매니저 만날 거야. 지금까지 있던 매니저가 레이어프 됐어.”
   “와아, 신난다. 고맙습니다!”
곁에 섰던 마잌도 덩달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Thank you!”
이 날 따라 마잌이 폴로 셔츠를 단정히 입고 왔다.
숙희는 다 큰 아이들이지만 자꾸 정이 가려는 걸 어쩌지 못 했다. 마음은 그러지 마라 해도 손이 저절로 나가려 했다. 
특히 마잌이 마음에 끌렸다. 
옛날 놀이공원에 데려갔었을 때 엄마의 정이 그리워서인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다녔던 민이이다.
   숙희는 이 날도 두 아이들을 저녁 먹이러 데려갔다. 
마잌이 이 날 따라 신이 나서 수다를 떨어댔다.
서니는 매리네잇 소스에 무친 앤젤헤어를 포크로 찍어가며 잠자코 먹기만 했다. 
그녀는 그러다 마잌이 조용해지자 그때야 비로소 말을 꺼냈다. “삼춘이 이혼하시는데, 지금 여기 없어요.” 
숙희는 손에 쥐었던 포크를 천천히 내려 놓으며 설이를 무섭게 노려봤다.
설이가 그녀의 그런 분위기를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을 계속했다. “I mean, he was with us and he’s gone now. (정말은, 우리하고 있었는데, 지금 어디로 갔어요.)”
숙희의 머리를 이혼이란 단어가 때렸다. 그래서 죽었다 하라 한 거야?
   "삼촌... 오션 씨티를 갔었어요."
쿵!
그러나 숙희는 조용히 입 언저리를 티슈로 딲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여튼 열심히 일해라."
남매가 일어서서 꾸뻑 인사했다.
숙희는 어쩌면 딸 같은 아이 앞을 떠나면서 주눅이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안다고 믿고 싶고 또 믿는 오운진이라면 조카한테 은근슬쩍 말을 비추지는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스물 넘긴 여자가 말할 때는 어떤 뉘앙스도 풍기는 것이었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1 13-3x123  (0) 2024.08.12
pt.1 13-2x122  (0) 2024.08.12
pt.1 12-10x120  (0) 2024.08.11
pt.1 12-9x119  (0) 2024.08.11
pt.1 12-8x118  (0) 202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