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은 오랫만에 듣는 남편의 음성이 싸늘한 것을 느끼고 소름이 끼쳤다.
어찌나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음색이었는지 뱃속의 아이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지저분하게 니 잘했니 내 잘했니 하지 말고, 변호사 사서 조용히 갈라스자구. 아이들은 지네들 선택에 맡기고. 영호는 아마 오늘 이 후로 안 나타날 거야.”
“왜, 왜, 내 동생한테 뭔 짓을 했는데!”
“동생? 오, 참, 동생이지. 그렇구나. 당신 동생 영호 걔 도둑질로 걸렸어. 주정붓 돈을 훔쳤어.”
“무슨 같잖은 소릴!”
“복권 판매 대금을 함부로 잡숴? 느그 남매들 진짜 간뎅이가 배 밖으로 나왔구나?”
“난 모르는 일이야!”
“그래. 영호자식이 그래도 의리는 있드만. 지가 혼자 다 뒤집어 쓴다 하고 좀 전에 딸려갔어.”
“뭐라구?”
“매상도 다 처먹고. 그 보다는 복권돈 훔친 걸로만 한 십년은 살거라더군?”
“야아!”
영란 특유의 한 옥타브 올라가는 비명이 터졌다. 그녀의 손에서 수화기가 떨어지고, 영란은 소파에 널부러졌다. ‘이 작자가 우리 가족을 완전히 휘두르네! 영아년은 납치하고 영호놈은 또 어디로 보낸 거야!’
영란은 반사적으로 일어나며 아이의 이름들을 비명처럼 소리쳐 불렀다.
“채리이! 키미이!”
두 딸이 이층계단 끝으로 대답도 소리도 없이 걸어와 멎었다.
“니네들 아빠 만났어?”
킴벌리가 언니인 챌리를 돌아다 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 만나지 마! 알았어?”
엄마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에 아이들이 전혀 반응을 안 보이고 조용히 돌아갔다.
‘그 자식이 아이들한테도 손 써 놓은 거 아냐? 쟤들 왜 저래!’
모텔로 돌아온 운진은 영호를 붙잡혀 가게 한 일을 영아에게 감추려다가 영아가 운진의 손에 난 상처를 어쩌다 그랬느냐고 자꾸 묻는 통에 할 수 없이 말해버렸다.
영아는 벽을 보며 눈물만 흘렸다. “그 다음은 뭐예요, 형부? 언니예요?”
“언니냐니?”
“그 다음엔 언니를 어떻게 하실 건대요?”
“언니야...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해야겠지.”
“뭐든 트집 잡아서 안 집어 넣어요?”
운진은 영아를 쳐다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처제, 돌아가고 싶으면 더 늦기 전에 가라구!”
“저 보구 이제 와서 돌아가라구요? 지금의 저 보구 가라구요?”
“처제, 보니까, 그래도 언니 오빠라 가슴이 아픈가 부지? 그렇겠지.”
“아무렇지도 않다면, 믿으시겠어요?”
“나 부정은 안 했어. 글쎄? 처제나 나나 갈 데라곤 아무 데도 없지. 그래, 이해해. 내 더 이상 말 안 할께 처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구. 다 들어줄 테니.”
“할 말도 없어요.”
“처제. 나랑 살아줄 거지?”
“모르겠어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정말 저 자신을 모르겠어요.”
“흔들리지 마, 처제. 나, 처제 믿고 일 벌리는 거야. 처제가 없으면 내가 무슨 미련이 있겠고 무슨 계획을 갖겠어. 그나마 처제가 나를 일깨워 주지 않았으면, 난 지금까지도 아무 것도 모르면서 살고 있었겠지.”
“글쎄요. 제가 잘했는 지 잘 못했는 지, 이젠 판단이 안 서요.”
"나는 처제에게 고마워 하고 있어. 날 일깨워 줘서..."
"그게 지금 와서는... 후회가 드니 어쩌면 좋죠?"
영아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운진의 품에 기댔다.
“이렇게 생각하라구, 처제. 처제가 일찍 일을 벌린 게 오히려 우리에게 상처가 가벼울 수 있는 거야. 더 진전됐다가 일이 터졌을 때를 상상해 봐, 처제. 아마 난, 감당도 못 하고...”
“자연히 아시게 됐었겠죠.”
영아의 그 말에 운진은 픽 웃으려했는데, 억울함에 그만 눈물이 비쳤다. "어쩌면,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았을 때가 더 나았어. 챌리 내 딸. 마누라 바람 피는 거 모르고..."
"하지만 지금은 다 밝혀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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