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가 부득부득 우겨서 숙희에게 점심을 샀다.
“안 그러면 제가 아줌마랑 점심을 같이 못 먹어요.”
“성격도 참 희한하다. 내가 매일 사 준 들, 그게 맘에 걸리니?”
“네.”
“그래, 솔직하니 좋다.”
“제가 아줌마랑 같이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저한테 잘하는 거 아세요?”
“그래? 말하자면 내가 니 빽이란 말이냐?”
“빽? 응... 아, 네!” 설이가 킥킥 웃었다.
숙희는 꾸밈없이 말하고 솔직하게 감정 표현을 하는 요즘 아이 설이에게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고도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닌다.
그리고 마잌을 생각하면 자꾸 손이 가려는 충동을 참는 고통이 보통 심한 게 아니다.
원인은 하나. 마잌에게서 운진의 모습이 풍긴다.
제 엄마인 운서언니를 닮았는데, 운진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그래서 마잌에게 친근감이 간다.
“마잌은 학교 간다더니, 갔니?”
“갈 거예요. 걘 한다면 하거든요. 아줌마한테 약속했다고 지킨대요.”
“그래. 공부를 해야 나은 장래를 보장받지.”
“그러니까요.”
“니 동생 착하지?”
“저한테만요. 걔도 삼춘처럼 굉장히 내성적이예요.”
“삼춘처럼? 삼춘이... 내성적이야?”
“네. 게다가 둘 다 욱 하는 승질만 있어 갖고, 못 말려요, 둘 다아.”
“잘 참는 성격이잖니, 삼춘은.”
“잘 참죠. 그러다가 엉뚱한데로 튀니 문제죠.”
숙희는 이 날 또 배웠다.
운진 그가 내성적인 성격에 욱 하는 성질로 엉뚱한 데로 튄다는. 한때 결혼을 염두에 두었던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알았던 것이, 고작 조카 만도 못 하다.
그렇다면 그는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까.
그렇게 쉽사리 하루 아침에 다른 여자를 찾아 갈 정도로... 나한테 그 정도로 부담이 없었나.
‘욱 하는 성질에 다른 여자를? 인생을 그런 식으로 살아?’
“삼춘은 롤러코스터도 못 타요. 아시죠?”
“엉? 그래. 참...”
“네! 얼마나 무서워하는데요! 떨어지면 죽는다고 절대 안 타요.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 로치가 나왔는데, 삼춘은 못 잡아요. 오히려 쫓죠. 엄마나 마잌이 때려 잡으면 막 싫어했어요. 무식하다구 얼마나 뭐라 했는 데요.”
“그래서 운동했다고 과격하게 한 날 싫어했나 보다, 그지?” 숙희는 궁금해 온 속을 말했다.
“아마, 그랬을 거에요.”
이십년 묵은 숙제가 의외로 쉽게 풀린다.
‘바퀴벌레도 못 잡는 남자라고... 차라리 쫓는 남자라고... 내가 그랬을 때 애교로 못 봐 주었나 어이가 없었는데, 흠, 그런 걸 싫어했구나...’
설이의 풀어가는 말이 무슨 암시같다.
'혹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숙희는 괜한 의심이 들었다.
“아줌마.”
“응? 왜?”
“아직도 우리 삼춘, 사랑하세요?”
“얘는 별 소릴!”
“안 하세요?”
“No comment! (말 안 해!)”
“아줌마. 저기요.”
“뭐?” 숙희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삼춘 서재에서 아줌마 사진이 나와서, 그 문제로 이혼하나 봐요.”
“응? 내 사진?”
"삼촌이 엄마랑 얘기하는 걸 옆에서 들었어요."
"내 사진 때문에 이혼을 한다고?"
"그런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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