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은 바보스럽고 만만해 보였던 남편이 어느 새 거인으로 느껴졌다.
그의 말투는 예나 지금이나 조심스럽게 한다. 그런데 그의 말 속에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들 중 영란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어떤 남자는, “Oh, oh, another one? (오, 오, 또 하나야?)” 하고, 영란의 배를 가리켰다.
영란도 운진도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못 했다. 아니.
영란은 제 입술을 가만히 물었고, 운진은 그냥 식 웃었다.
챌리와 킴벌리가 뒷방에서 나와 엄마에게 말없이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한두달 새에 킴벌리의 키가 크게 느껴져 영란은 작은딸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킴벌리가, “잌스큐즈 미!” 하고는 등을 돌렸다.
챌리가 크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섰다.
“아빠네 가?” 엄마란 이가 애써 좋은 음색으로 물었다.
“네.”
“네.”
두 딸아이가 약속이나 한듯 엄마에게 존대어로 대답했다.
영란은 기가 탁 막혔다.
대답들도 엄마가 언성을 높여야 맞소리를 지르던 아이들이 다른 티를 냈다. ‘아빠가 어떻게 해 놨길래 애들이 저래졌어? 기를 다 죽여놨나?’
그런데 아이들은 기 죽은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표정들이 밝고 진지해 보였다.
아빠 운진이, “홈웤 다 했어?” 하고 물으니 킴벌리가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펼쳤다.
그것도 못 보던 행동이다. 언제부터 킴벌리가 숙제를 하고 챙겼단 말인가! 10학년에서 못 올라가고 평생 맴돌줄 알았던 작은 애가 숙제를 다 하고 또 한 것을 아비에게 보여주다니.
챌리가 곁에서 킴벌리의 공책을 같이 들여다 보는데 자매의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저 둘이 그렇게 다투고 서로 악을 써댔었다면 누가 믿을까 싶게 다정해 보인다.
챌리가 흘러내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밀어올리는데 예쁜 귀에 새로 뚫은 귀고리가 나타났다.
킴벌리가 언니의 귀를 만졌다.
"She did, dad."
챌리의 그 말에 키미가 노트장을 접었다.
아빠와 작은딸이 하이 파이브를 소리도 크게 했다.
챌리와 킴벌리가 샌드위치 싸는 아주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치킨 윙 고맙습니다, 아줌마!”
"Thanks for the sandwich, 아줌마!"
자매가 나란히 인사를 했다.
영란이 잠시 맡았었을 때 그만 두었던 아줌마가 다시 와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여인네가 손을 흔들었다.
복권도 먼젓번 아줌마가 다시 와서 찍고 있다.
챌리와 키미가 그 복권 찍는 여인네에게도 인사했다.
두 딸이 뱈퍀을 메고 아주 정답게 얘기를 주고 받으며 가게를 나선다.
챌리가 차 열쇠로 옆자리 문부터 끌러주고 운전석으로 돌아가니 킴벌리가 차 문을 열면서 계속 뭐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하는 분위기들이 전처럼 나 잘 났니 너 어쩌니 다투는 기색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킴벌리의 의복이 펑크 스타일에서 캐주얼로 바뀌었다.
자매는 차 속으로 사라지고 그리고 그 차는 곧 가게 앞을 떠나갔다.
영란은 얼마 전에 챌리가 학교 스케쥴 문제로 아빠와 얘기해야 한다고 기다렸던 기억이 났다. 그 후 부녀간에 무슨 의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순조롭게 되어 가는 모양이다.
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영란에게 운진이 말을 걸었다.
“키미가 운전을 배우고 싶다는데, 괜찮을래나 모르겠네? 당신 생각은 어떻소?”
“벌써?” 영란은 눈물이 날까 봐 천장을 올려다 봤다.
“키미가 만 열여섯이더라고.”
“그렇지, 참!”
영란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내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고맙긴, 뭘.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 해요.”
"다행히 애들하고 좋아보이네." 영란은 진심을 말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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