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방에서 낮잠을 자던 킴벌리가 부수수한 얼굴로 일어나 가게로 나왔다.
“What’s going on? (무슨 일이야?)”
“엄마가 아프대.” 챌리가 대답해 줬다.
“Let her die! (죽으라 그래!)” 킴벌리가 콱 쏴부쳤다.
운진은 챌리에게 눈짓으로 아무 말 말라고 신호를 보냈다.
킴벌리는 엄마 소리만 들어도 화를 냈다. 그토록 좋아하던 엄마에 대한 감정을 하루 아침에 바꿔 버린 킴벌리는 좀체 돌이키려 하질 않았다. 키미는 아비를 닮아서 제 스스로 돌아올 때까지 내버려둬야지 억지로 설득하려 하다가는 역효과를 낸다. 그런 키미가 이번에는 길게 가는 것 같다.
복권 찍는 아주머니가 일곱시에 마감하고 퇴근했다.
곧 이어 샌드위치 파는 아주머니도 청소를 끝내고 퇴근했다.
“우리 오늘 문 일찍 닫고 뭐 먹으러 가자.”
아빠의 말에 챌리와 킴벌리가 예이! 하고 좋아했다.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이들은 냉정하리만치 무반응이었다.
운진은 아이들과 저녁을 먹으며 엄마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들어 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이 영호가 가게로 들이닥침으로써 무산될 뻔했다.
영호는 마치 운진을 칠 기세로 들이닥치다가 새삼 조카들을 보고 주춤했다. “채리, 키미. 잘 있었니?”
운진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영호에게 말했다. “나가 있어.”
영호가 가게 유리문을 발로 밀고 나갔다.
“아빠, 싸우지 마세요.” 챌리가 잔뜩 겁 먹은 표정을 지었다.
“What? 싸워? You mean, fight? (뭐? 싸운다고?)” 킴벌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 싸워. 걱정하지 마.”
운진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새끼, 애들 있는데 왜 또 온 거야...’
딸 둘이 아빠를 잡으려다 말았다.
운진은 영호를 적당히 따돌리리라 하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제 차에 기대었던 영호가 땅에다 침을 찍 뱉으며 말을 던졌다. “우리 누인 아예 제껴 놓은 거유? 씨발?”
“씨발 씨발 하지 마라? 네 손위 매형이다.”
“매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씨발!”
“너 가, 임마! 계속 그렇게 좆 같이 말하려면 들을 거 없으니까, 가!”
“내 딱 한마디만 하겠시다!”
“하겠시다? 싸가지 없는 놈, 어디다 대고 똥폼에 좆 같은 말만 하니? 가, 임마!”
운진은 돌아서면서 영호의 몸이 빠른 속도로 달겨드는걸 봤다.
그는 발이 먼저 올라가며 동시에 그를 피하며 방어하려고 했다. 이번에도 공교롭게 운진의 그 처든 발이 영호의 배를 차는 꼴이 되었다.
영호가, 엇, 씨바알! 하며, 두 팔을 허우적대다가 뒤로 나가 넘어졌다. 그가 엉덩방아를 찍으면서 차에 머리를 박았다. 보도 블록에 남아있는 물기가 영호를 미끄러뜨린 것에 도움이 되었다.
“앗, 씨발! 악! 씨발!”
영호가 제 뒷통수를 두 팔로 움켜쥐었다. 머리 윗끝이 문 손잡이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몹시 아픈지 주저 앉은 채로 머리를 감싸 쥐고 좌우로 흔들며, 아오, 아오! 소리만 냈다. 엄살은 아닌 모양이었다.
“왜 자꾸 대드나, 엉?”
운진은 일단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영호를 대했다. “자네 대체 나한테서 뭘 원하나! 이번에도 자네 누나가 사정해서 빼줬는데, 그에 대해서 고맙단 말을 이런 식으로 하나?”
영호가 머리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일어섰다. “암만 이혼했지만 전혀 아는 척도 안 하는 건 좀 지나치다구, 씨발! 산 정으로도 그렇게는 못하지, 씨발!”
“이 새끼, 딴 소리에 계속 얻다 대고 씨발이래! 가라, 임마! 그리고, 아는 척 안 한다니!”
“아니, 오랫만에 본 누이가 완전히 송장처럼 누워있는데 열이 안 나, 그럼?”
“이 새끼, 계속 반말지꺼리야! 너 몇살이야, 임마!”
“아니, 처남 보고 임마라는 건 잘 하는 짓이구?”
“싸가지 없는 놈! 인간 되긴 애전에 틀린 놈이야, 넌!”
“에이, 씨발!”
영호가 또 달겨들려 하는데 챌리와 킴벌리가 헤이 하고 소리지르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운진은 딸들을 향해 얼른 돌아섰다. "아무 일도 아냐."
여자조카 둘이 아빠를 옹위하며 삼촌을 몹시 째려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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